중국의 민족주의는 어떻게 팬덤과 결합했는가 ― 『아이돌이 된 국가』
동아대학교 김도훈
중국과 주변 국가가 정치적 이슈를 둘러싸고 마찰을 빚을 때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장면이 있다. 웨이보(微博), 빌리빌리(哔哩哔哩), 더우인(抖音)과 같은 중국의 주요 플랫폼은 물론, 페이스북이나 X(구 트위터), 인스타그램처럼 일반적으로 중국에서 접속이 차단된 해외 플랫폼에까지 중국 네티즌들의 집단적인 움직임이 나타나는 것이다. 이들은 이른바 ‘좌표’를 찍은 웹사이트에 몰려가 해당 국가의 누리꾼과 설전을 벌이거나, 다소 풍자적인 이모티콘과 게시물을 대량 업로드하는가 하면, 유사한 내용의 댓글을 반복적으로 게시하며 노골적인 민족주의 성향을 드러낸다. 이러한 장면은 이제 낯설지 않은 풍경이 되었다.
이처럼 ‘우마오당(五毛党)’1), ‘소분홍(小粉红)’2), ‘중공 댓글부대’, ‘인터넷 홍위병’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 중국의 강성 민족주의 네티즌들은, 일종의 ‘최전선’에서 자국의 정치적 조치가 정당했음을 주장하고, 국가 간 분쟁을 초래한 이슈 당사자의 발언이나 행동을 풍자하거나 희화화한 이미지를 공유한다. 관련된 이모티콘과 온라인 밈(Meme)을 만들어 배포하기도 하며, 때로는 특정 국가 기업의 제품을 불태우는 영상이나 예정되었던 여행의 취소를 인증하는 방식으로 중국식 ‘경제 제재’의 일원으로서 스스로를 위치 짓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들은 누구일까. ‘중국 네티즌’이라는 다소 단순하게 구분지어진 범주에 속한 이들은 모두 유사한 시각과 판단을 공유하며, 중국 정부와 공산당의 세뇌와 금전적 지원 아래 상부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는 기계적 행위자에 불과한 것일까. 『아이돌이 된 국가: 중국의 인터넷문화와 팬덤 민족주의』(갈무리, 2022)는 이러한 단순한 상(像)을 출발점으로 삼아, 전혀 다른 이야기의 방향을 제시한다.

이 책은 중국의 디지털 공간에서 전개되는 강성 민족주의 네티즌들의 움직임을 단순한 ‘관제 동원’이나 일시적 감정 폭발로 환원하지 않고, 팬덤 문화와 플랫폼 환경, 그리고 감정의 정치라는 맥락 속에서 재구성한다. 비록 단일 저자의 일관된 이론 체계를 전개하는 저작은 아니지만, 여러 연구자들의 글을 엮은 편서라는 형식은 오히려 이 현상을 하나의 단선적인 설명이 아닌, 다양한 각도에서 비추는 모자이크적 분석으로 구성되게 만든다. 각 장은 독립적으로 읽힐 수 있으면서도, 함께 놓고 읽을 때 중국 사회에서 팬덤과 민족주의가 어떤 방식으로 맞물려 작동하는지를 입체적으로 드러낸다. 특히 이 책은 2016년 대만 총통 선거를 계기로 촉발된 이른바 ‘디바 원정(帝吧出征)’ 사건을 중요한 분기점으로 삼아, 중국의 사이버 민족주의가 어떻게 팬덤적 동원, 놀이화된 언어, 집단적 감정의 리듬과 결합하며 새로운 형태로 재편되었는지를 추적한다. 이 책은 이러한 변화가 중국 사회의 특수한 정치 환경에만 기인한 현상이 아니라, 디지털 플랫폼과 감정 경제가 결합된 현대 사회 전반의 구조적 변화와도 맞물려 있음을 보여준다.
이 책의 여러 장(章)이 공통적으로 보여주는 중요한 시사점은 문화콘텐츠와 디지털 참여 문화가 더 이상 단순한 산업 영역이나 개인의 취향 차원에 머무르지 않고, 국가나 지역, 또는 글로벌 층위에서 반복적으로 정치화되고 ‘안보화(Securitization)’되는 과정 속에 놓여 있다는 점이다. 이 과정에서 ‘팬덤’은 아이돌이나 문화 상품을 둘러싼 소비 공동체를 넘어, 국가 이미지와 민족 정체성을 감정적으로 지지하고 방어하는 집합적 실천의 형태로 확장된다. 온라인 밈, 이모티콘, 놀이적 언어, 집단 댓글 행동과 같은 일상적 커뮤니케이션 양식은 이 과정에서 정치적 감정과 결합되며 새로운 민족주의 실천으로 전환되는 것이다. 이는 디지털 환경에서의 문화 소비가 단순한 여가 활동이 아니라, 정치적 의미를 생산하고 유통하는 사회적 장치로 기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아이돌이 된 국가』가 흥미로운 지점은 이와 같은 ‘팬덤 민족주의’가 반드시 국가에 의해 일방적으로 기획되고 주입된 결과만은 아니라는 점을 함께 보여준다는 데 있다. 책 속 사례들은 자발적 참여와 놀이의 언어를 통해 민족주의가 확산되면서도, 그 결과는 국가의 외교 노선과 문화안보 담론을 보완하는 방향으로 수렴되는 복합적인 구조를 드러낸다. 이는 문화의 정치화와 안보화가 강압적 통제만이 아니라, 일상적 참여와 감정의 동학을 통해서도 이루어질 수 있음을 시사한다. 개인의 놀이와 취향, 참여 욕구가 집합적 정치 감정으로 전환되는 과정은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권력 작동 방식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로 읽을 수 있다.
디지털 팬덤 민족주의가 보여주는 또 하나의 중요한 변화는, 민족주의가 더 이상 특정 정치적 사건이나 외교 갈등이 발생했을 때만 분출되는 일시적 감정이 아니라, 일상적 문화 소비의 흐름 속에서 지속적으로 재생산되는 정서 구조로 전환되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의 민족주의가 역사 교과서, 국가 기념일, 정치 연설과 같은 공식적 장치들을 통해 형성되고 재생산되었다면, 오늘날의 팬덤 민족주의는 온라인 플랫폼, 댓글 문화, 밈, 숏폼 영상, 팬 커뮤니티 등 훨씬 일상적인 미디어 환경 속에서 형성된다. 이는 민족주의의 작동 무대가 제도 정치의 공간에서 일상 문화의 공간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변화는 민족주의가 보다 감정적이고 개인화된 형태로 체화되는 방향으로 이어진다. 팬덤 문화에서 형성된 감정적 몰입과 동일시의 구조는 국가 이미지와 결합하면서, 국가를 하나의 '응원 대상'이자 '보호해야 할 존재'로 인식하게 만드는 심리적 기반을 제공하는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중국의 사이버 민족주의는 단순한 이념이나 정치적 신념이라기보다, 아이돌 팬덤에서 보이는 참여 방식과 감정 동학을 닮은 새로운 형태로 재구성된다. 국가에 대한 지지와 방어가 비판적 숙고보다 정서적 애착과 집단적 소속감에 의해 작동하며, 이는 국가를 추상적 제도나 권력 체제가 아니라 감정적으로 교감해야 할 대상, 나아가 '사랑'과 '충성'의 대상처럼 인식하게 만드는 효과를 낳는다. 이 책이 제시하는 팬덤 민족주의는 바로 이러한 감정 구조의 전환을 잘 포착한다.
이러한 팬덤 민족주의가 2010년대 중반에 접어들며 본격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중국의 경제 성장이나 사회 발전과 함께, 뉴미디어(특히 소셜 미디어)는 젊은 세대의 활동 환경을 해체하고 재구성하며, 과거에는 분리되어 있던 오락, 소비, 소통과 정치적 참여의 영역을 하나의 플랫폼 공간 안으로 끌어들였다. 따라서, 디지털 네이티브로 대표되는 1990년대 이후 세대에게 정치적 이슈는 게임, 영상, 쇼핑, 커뮤니티 활동과 동일한 화면 안에서 동시에 소비되고 순환되며, 그 경계가 분명히 구분되지 않는다. 이런 환경 속에서 다양한 온라인 활동은 함께 참여하고 소속감을 확인하는 하나의 반복된 일상이 되고, “우리는 같은 편”이라는 감각과 감정적인 에너지를 계속 쌓아, 랜들 콜린스가 말한 ‘상호작용 의례의 사슬’을 형성한다. 그 결과 팬덤 민족주의는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의 일상적인 문화 소비 방식과 자연스럽게 엮인 하나의 습관적 감정 구조로 자리 잡게 된다.

그들의 정보 습득, 교류, 소비, 오락, 게임, 정치참여 등은 모두 같은 컴퓨터나 핸드폰 단말기에서 완성되며,
테크놀로지가 이런 서로 다른 영역들 사이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오락의 논리와 정치의 논리를 하나로 만들어버렸다.
따라서 인터넷은 민족주의 운동의 기원, 성장, 조직, 행동에 있어서 필수불가결한 전제조건이 되었다.
따라서, 현재 중국의 팬덤 민족주의를 구성하는 네티즌들은 누군가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는 집단이라기보다, 스스로 즐기고, 참여하고, 확산시키며 만들어지는 하나의 문화에 가깝다. 댓글을 달고, 짧은 영상을 만들고, 밈을 공유하는 일련의 행동들은 누군가에게는 놀이처럼 느껴지지만, 팬덤 문화에서 익숙해진 언어와 감정의 방식은 자연스럽게 국가 이미지와 겹쳐지고, 애국심은 신념이라기보다 참여를 통해 보여줘야 하는 태도에 가까워진다. 어떤 이슈에 얼마나 빠르게 반응했는지, 어디에 댓글을 달았는지가 곧 자신의 입장을 드러내는 방식이 되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구조적 변화가 단순히 중국 사회만의 특수한 현상이라기보다, 디지털 플랫폼에서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익숙한 풍경과 닮아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게시물을 공유하고, 좋아요를 누르고, 댓글을 다는 방식으로 자신의 취향과 정체성을 드러내는 일은 이미 일상의 일부가 되었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다수의 국가에서는 ‘국가’ 뿐만 아니라, 특정 정당이나 정치인, 정치 인플루언서 등 상징적 존재 역시 강력한 팬덤을 형성하며, 지지와 비판의 언어는 점점 참여와 소속감을 확인하는 일상의 실천으로 변화하고 있다. 이 책이 보여주는 중국의 팬덤 민족주의는, 이러한 일상적 참여 방식이 국가와 민족이라는 거대한 대상과 결합할 때 어떤 모습으로 변형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 중 하나인 것이다.
결국 이 책은 “왜 중국 네티즌들은 저렇게까지 할까?”라는 질문을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 정치와 관계를 맺고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조용히 바꿔 놓는다. 중국의 사례를 다루지만, 읽고 나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디지털 환경과 정치의 역학관계 안에서 형성되는 감정의 흐름을 한 번쯤 돌아보게 만드는 책이다.
1) 중국 인터넷 공간에서 정부나 공산당을 옹호하는 댓글을 조직적으로 게시하는 이용자 집단을 지칭하는 용어로, 한 건의 댓글 작성에 ‘5마오(五毛, 0.5위안)’의 보수를 받는다는 풍자적 인식에서 유래하였다. 실제로 이러한 활동이 체계적인 금전 보상 구조에 의해 운영되는지에 대해서는 논쟁이 있으나, 중국 네티즌들 사이에서 ‘온라인 선전 부대’를 가리키는 일종의 통칭으로 널리 사용되고 있다.
2) 2010년대 이후 등장한 중국의 젊은 세대 중심의 강성 민족주의 네티즌을 가리키는 표현으로, 주로 애국적 정서를 적극적으로 표출하고 온라인 공간에서 중국 정부의 입장을 자발적으로 옹호하는 집단을 지칭한다. 팬덤 문화와 결합된 자발적 참여, 감정적 동원, 놀이적 언어 사용을 특징으로 하는 보다 대중적이고 일상화된 형태의 사이버 민족주의를 상징하는 개념으로 이해된다.
< 2026. Vol. 20
중국의 민족주의는 어떻게 팬덤과 결합했는가 ― 『아이돌이 된 국가』
동아대학교 김도훈
중국과 주변 국가가 정치적 이슈를 둘러싸고 마찰을 빚을 때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장면이 있다. 웨이보(微博), 빌리빌리(哔哩哔哩), 더우인(抖音)과 같은 중국의 주요 플랫폼은 물론, 페이스북이나 X(구 트위터), 인스타그램처럼 일반적으로 중국에서 접속이 차단된 해외 플랫폼에까지 중국 네티즌들의 집단적인 움직임이 나타나는 것이다. 이들은 이른바 ‘좌표’를 찍은 웹사이트에 몰려가 해당 국가의 누리꾼과 설전을 벌이거나, 다소 풍자적인 이모티콘과 게시물을 대량 업로드하는가 하면, 유사한 내용의 댓글을 반복적으로 게시하며 노골적인 민족주의 성향을 드러낸다. 이러한 장면은 이제 낯설지 않은 풍경이 되었다.
이처럼 ‘우마오당(五毛党)’1), ‘소분홍(小粉红)’2), ‘중공 댓글부대’, ‘인터넷 홍위병’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 중국의 강성 민족주의 네티즌들은, 일종의 ‘최전선’에서 자국의 정치적 조치가 정당했음을 주장하고, 국가 간 분쟁을 초래한 이슈 당사자의 발언이나 행동을 풍자하거나 희화화한 이미지를 공유한다. 관련된 이모티콘과 온라인 밈(Meme)을 만들어 배포하기도 하며, 때로는 특정 국가 기업의 제품을 불태우는 영상이나 예정되었던 여행의 취소를 인증하는 방식으로 중국식 ‘경제 제재’의 일원으로서 스스로를 위치 짓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들은 누구일까. ‘중국 네티즌’이라는 다소 단순하게 구분지어진 범주에 속한 이들은 모두 유사한 시각과 판단을 공유하며, 중국 정부와 공산당의 세뇌와 금전적 지원 아래 상부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는 기계적 행위자에 불과한 것일까. 『아이돌이 된 국가: 중국의 인터넷문화와 팬덤 민족주의』(갈무리, 2022)는 이러한 단순한 상(像)을 출발점으로 삼아, 전혀 다른 이야기의 방향을 제시한다.
이 책은 중국의 디지털 공간에서 전개되는 강성 민족주의 네티즌들의 움직임을 단순한 ‘관제 동원’이나 일시적 감정 폭발로 환원하지 않고, 팬덤 문화와 플랫폼 환경, 그리고 감정의 정치라는 맥락 속에서 재구성한다. 비록 단일 저자의 일관된 이론 체계를 전개하는 저작은 아니지만, 여러 연구자들의 글을 엮은 편서라는 형식은 오히려 이 현상을 하나의 단선적인 설명이 아닌, 다양한 각도에서 비추는 모자이크적 분석으로 구성되게 만든다. 각 장은 독립적으로 읽힐 수 있으면서도, 함께 놓고 읽을 때 중국 사회에서 팬덤과 민족주의가 어떤 방식으로 맞물려 작동하는지를 입체적으로 드러낸다. 특히 이 책은 2016년 대만 총통 선거를 계기로 촉발된 이른바 ‘디바 원정(帝吧出征)’ 사건을 중요한 분기점으로 삼아, 중국의 사이버 민족주의가 어떻게 팬덤적 동원, 놀이화된 언어, 집단적 감정의 리듬과 결합하며 새로운 형태로 재편되었는지를 추적한다. 이 책은 이러한 변화가 중국 사회의 특수한 정치 환경에만 기인한 현상이 아니라, 디지털 플랫폼과 감정 경제가 결합된 현대 사회 전반의 구조적 변화와도 맞물려 있음을 보여준다.
이 책의 여러 장(章)이 공통적으로 보여주는 중요한 시사점은 문화콘텐츠와 디지털 참여 문화가 더 이상 단순한 산업 영역이나 개인의 취향 차원에 머무르지 않고, 국가나 지역, 또는 글로벌 층위에서 반복적으로 정치화되고 ‘안보화(Securitization)’되는 과정 속에 놓여 있다는 점이다. 이 과정에서 ‘팬덤’은 아이돌이나 문화 상품을 둘러싼 소비 공동체를 넘어, 국가 이미지와 민족 정체성을 감정적으로 지지하고 방어하는 집합적 실천의 형태로 확장된다. 온라인 밈, 이모티콘, 놀이적 언어, 집단 댓글 행동과 같은 일상적 커뮤니케이션 양식은 이 과정에서 정치적 감정과 결합되며 새로운 민족주의 실천으로 전환되는 것이다. 이는 디지털 환경에서의 문화 소비가 단순한 여가 활동이 아니라, 정치적 의미를 생산하고 유통하는 사회적 장치로 기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아이돌이 된 국가』가 흥미로운 지점은 이와 같은 ‘팬덤 민족주의’가 반드시 국가에 의해 일방적으로 기획되고 주입된 결과만은 아니라는 점을 함께 보여준다는 데 있다. 책 속 사례들은 자발적 참여와 놀이의 언어를 통해 민족주의가 확산되면서도, 그 결과는 국가의 외교 노선과 문화안보 담론을 보완하는 방향으로 수렴되는 복합적인 구조를 드러낸다. 이는 문화의 정치화와 안보화가 강압적 통제만이 아니라, 일상적 참여와 감정의 동학을 통해서도 이루어질 수 있음을 시사한다. 개인의 놀이와 취향, 참여 욕구가 집합적 정치 감정으로 전환되는 과정은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권력 작동 방식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로 읽을 수 있다.
디지털 팬덤 민족주의가 보여주는 또 하나의 중요한 변화는, 민족주의가 더 이상 특정 정치적 사건이나 외교 갈등이 발생했을 때만 분출되는 일시적 감정이 아니라, 일상적 문화 소비의 흐름 속에서 지속적으로 재생산되는 정서 구조로 전환되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의 민족주의가 역사 교과서, 국가 기념일, 정치 연설과 같은 공식적 장치들을 통해 형성되고 재생산되었다면, 오늘날의 팬덤 민족주의는 온라인 플랫폼, 댓글 문화, 밈, 숏폼 영상, 팬 커뮤니티 등 훨씬 일상적인 미디어 환경 속에서 형성된다. 이는 민족주의의 작동 무대가 제도 정치의 공간에서 일상 문화의 공간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변화는 민족주의가 보다 감정적이고 개인화된 형태로 체화되는 방향으로 이어진다. 팬덤 문화에서 형성된 감정적 몰입과 동일시의 구조는 국가 이미지와 결합하면서, 국가를 하나의 '응원 대상'이자 '보호해야 할 존재'로 인식하게 만드는 심리적 기반을 제공하는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중국의 사이버 민족주의는 단순한 이념이나 정치적 신념이라기보다, 아이돌 팬덤에서 보이는 참여 방식과 감정 동학을 닮은 새로운 형태로 재구성된다. 국가에 대한 지지와 방어가 비판적 숙고보다 정서적 애착과 집단적 소속감에 의해 작동하며, 이는 국가를 추상적 제도나 권력 체제가 아니라 감정적으로 교감해야 할 대상, 나아가 '사랑'과 '충성'의 대상처럼 인식하게 만드는 효과를 낳는다. 이 책이 제시하는 팬덤 민족주의는 바로 이러한 감정 구조의 전환을 잘 포착한다.
이러한 팬덤 민족주의가 2010년대 중반에 접어들며 본격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중국의 경제 성장이나 사회 발전과 함께, 뉴미디어(특히 소셜 미디어)는 젊은 세대의 활동 환경을 해체하고 재구성하며, 과거에는 분리되어 있던 오락, 소비, 소통과 정치적 참여의 영역을 하나의 플랫폼 공간 안으로 끌어들였다. 따라서, 디지털 네이티브로 대표되는 1990년대 이후 세대에게 정치적 이슈는 게임, 영상, 쇼핑, 커뮤니티 활동과 동일한 화면 안에서 동시에 소비되고 순환되며, 그 경계가 분명히 구분되지 않는다. 이런 환경 속에서 다양한 온라인 활동은 함께 참여하고 소속감을 확인하는 하나의 반복된 일상이 되고, “우리는 같은 편”이라는 감각과 감정적인 에너지를 계속 쌓아, 랜들 콜린스가 말한 ‘상호작용 의례의 사슬’을 형성한다. 그 결과 팬덤 민족주의는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의 일상적인 문화 소비 방식과 자연스럽게 엮인 하나의 습관적 감정 구조로 자리 잡게 된다.
그들의 정보 습득, 교류, 소비, 오락, 게임, 정치참여 등은 모두 같은 컴퓨터나 핸드폰 단말기에서 완성되며,
테크놀로지가 이런 서로 다른 영역들 사이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오락의 논리와 정치의 논리를 하나로 만들어버렸다.
따라서 인터넷은 민족주의 운동의 기원, 성장, 조직, 행동에 있어서 필수불가결한 전제조건이 되었다.
따라서, 현재 중국의 팬덤 민족주의를 구성하는 네티즌들은 누군가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는 집단이라기보다, 스스로 즐기고, 참여하고, 확산시키며 만들어지는 하나의 문화에 가깝다. 댓글을 달고, 짧은 영상을 만들고, 밈을 공유하는 일련의 행동들은 누군가에게는 놀이처럼 느껴지지만, 팬덤 문화에서 익숙해진 언어와 감정의 방식은 자연스럽게 국가 이미지와 겹쳐지고, 애국심은 신념이라기보다 참여를 통해 보여줘야 하는 태도에 가까워진다. 어떤 이슈에 얼마나 빠르게 반응했는지, 어디에 댓글을 달았는지가 곧 자신의 입장을 드러내는 방식이 되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구조적 변화가 단순히 중국 사회만의 특수한 현상이라기보다, 디지털 플랫폼에서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익숙한 풍경과 닮아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게시물을 공유하고, 좋아요를 누르고, 댓글을 다는 방식으로 자신의 취향과 정체성을 드러내는 일은 이미 일상의 일부가 되었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다수의 국가에서는 ‘국가’ 뿐만 아니라, 특정 정당이나 정치인, 정치 인플루언서 등 상징적 존재 역시 강력한 팬덤을 형성하며, 지지와 비판의 언어는 점점 참여와 소속감을 확인하는 일상의 실천으로 변화하고 있다. 이 책이 보여주는 중국의 팬덤 민족주의는, 이러한 일상적 참여 방식이 국가와 민족이라는 거대한 대상과 결합할 때 어떤 모습으로 변형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 중 하나인 것이다.
결국 이 책은 “왜 중국 네티즌들은 저렇게까지 할까?”라는 질문을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 정치와 관계를 맺고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조용히 바꿔 놓는다. 중국의 사례를 다루지만, 읽고 나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디지털 환경과 정치의 역학관계 안에서 형성되는 감정의 흐름을 한 번쯤 돌아보게 만드는 책이다.
1) 중국 인터넷 공간에서 정부나 공산당을 옹호하는 댓글을 조직적으로 게시하는 이용자 집단을 지칭하는 용어로, 한 건의 댓글 작성에 ‘5마오(五毛, 0.5위안)’의 보수를 받는다는 풍자적 인식에서 유래하였다. 실제로 이러한 활동이 체계적인 금전 보상 구조에 의해 운영되는지에 대해서는 논쟁이 있으나, 중국 네티즌들 사이에서 ‘온라인 선전 부대’를 가리키는 일종의 통칭으로 널리 사용되고 있다.
2) 2010년대 이후 등장한 중국의 젊은 세대 중심의 강성 민족주의 네티즌을 가리키는 표현으로, 주로 애국적 정서를 적극적으로 표출하고 온라인 공간에서 중국 정부의 입장을 자발적으로 옹호하는 집단을 지칭한다. 팬덤 문화와 결합된 자발적 참여, 감정적 동원, 놀이적 언어 사용을 특징으로 하는 보다 대중적이고 일상화된 형태의 사이버 민족주의를 상징하는 개념으로 이해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