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SF 굴기’와 인간 존재의 위상


경상국립대 중어중문학과 박민호


1. 중국과 중국 SF의 굴기

  바야흐로 중국 SF의 시대다. 지난 2015년 류츠신(刘慈欣)이 아시아인 최초로 휴고상의 주인공이 되며 막을 연 이 시대는, 하오징팡(郝景芳)과 하이야(海漄)가 각각 2016년과 2023년 휴고상을 수상하고, 2024년 초 류츠신의 대표작 『삼체(三体)』가 넷플릭스(Netflix)에서 8부작 드라마로 각색되어 전 세계 시청자 수 1위를 기록하며 정점에 달했다. 이러한 흐름에서 우리나라 출판계도 발 빠르게 움직이며 류츠신의 다른 작품들과 중국 여타 SF 작가들의 작품을 독자들에게 선보이고 있다.

  SF 장르의 창시자 휴고 건즈백(Hugo Gernsback)이 『어메이징 스토리스(Amazing Stories)』를 창간한 후 한 세기 동안 서양인의 독무대였던 SF 문학계에서 중국인 작가들이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일은 가히 징후적(Symptomatic)이라 할 만하다. 그것은 19세기 말부터 오랫동안 ‘동아시아의 병자(東亞病夫)’로 불렸던 중국이 ‘깊은 잠’에서 깨어나 기지개를 켜는 ‘사자’로 탈바꿈하는 순간으로 의미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징후적 읽기’가 불가능한 것이 아님을 우리는 최근 중국의 ‘과학 굴기’, ‘우주 굴기’ 등에서 확인하고 있다. 1840년 아편전쟁 이래 중국의 ‘현대화’ 이념이 오랫동안 서구를 뒤쫓는 형국 위에 있었다면, 오늘날 그것은 서구를 초월하고 세계를 선도할 수 있다는 자신감 위에 뿌리내리고 있다. 이제 세계인의 관심은 권위주의 체제인 중국이 과연 자유주의 진영을 능가하는 문명과 ‘대안적(alternative)’ 이념을 구성해 낼 수 있는가 하는 점에 쏠린다. (물론 ‘중국 굴기’의 결과가 유토피아일 것인가 디스토피아일 것인가 하는 질문은 유효하지만 말이다.) 중국 ‘SF의 굴기’도 이러한 맥락과 부분적으로 맞닿아 있다.

  다만 이러한 맥락을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면, 중국 SF 작품들이 담고 있는 풍부한 의미들을 놓치는 우를 범할 수 있다. 노란색 렌즈를 통과한 세계상이 노랗게 보이듯, 중국을 보는 눈이 특정한 틀에 갇힌다면 중국 SF 작품을 해석하고 의미화하는 시선도 왜곡될 가능성이 크다. 그런 의미에서 중국 SF 작품들을 자세히 읽고 그것 안에 존재하는 다양한 의미망을 진지하고 편견 없이 사유하는 일이 필요하다.


2. 『삼체』는 인류에게 어떤 가치를 요구하나?

  『삼체』는 의심할 나위 없는 류츠신의 대표작이다. 엄청난 시공간적 스케일과 심오한 철학적 함의를 지녀 SF계의 대작이라 불려도 손색이 없다. 작품 속 시간의 흐름은 ‘문화대혁명(1966-1976)’에서부터 현재와 근미래를 거쳐 서기 1890만년까지 펼쳐지며, 공간의 너비는 중국에서 세계로, 태양계로, 종국에는 위치를 특정할 수 없는 머나먼 우주 공간으로 확장된다. 무한에 가까운 이와 같은 시공간 속에서 현생 인류는 극소수를 제외하면 모두 사라지고, 지구와 태양계는 1차원 평면화되는 공전의 재난에 직면한다.

  인류에 이와 같은 재난을 야기한 것은 무엇인가? 『삼체』는 크게 두 가지 차원으로 재난의 원인을 설명한다. 하나는 인류 내부 원인이고 다른 하나는 외부 공격이다. 인류 내부 원인은 다시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인류 사회에 뿌리 깊은 갈등과 증오, 그리고 인류의 안일과 무능이 그것이다. 그리고 외부 공격이란 일차적으로 삼체인의 침공을 의미하지만, 더욱 파괴적인 것은 인류와 삼체 모두를 멸망에 이르게 한 제3의 이름 모를 외계 문명의 공격이었다.

  물론 인류는 시시각각 다가오는 외계 문명의 침공과 지구 세계의 파괴 가능성에 대응하여 경이로운 노력과 희생, 굳센 의지와 결단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것들은 종종 불가해한 기행, 고집불통, 위험천만한 모험, 기존 가치를 뿌리째 뒤흔들 비도덕으로 비쳐 다수 사람의 저항과 비난에 직면한다. 이에 일부 논자들은 『삼체』의 작가가 ‘민주주의’나 ‘휴머니즘’에 대해 표출하는 부정적이고 비관적인 정념에 불쾌감을 나타낸다. 소수의 위인이나 엘리트의 고독한 결단과 숭고한 헌신에 반하여, ‘대중’은 공동체의 지속과 안녕이 아닌 개인의 이익이나 ‘평등’의 가치에 기울어 있는 것처럼 묘사되기 때문이다. 일견 작가는 이러한 묘사를 통해 근대 서구의 중심 가치로 평가되는 민주주의나 휴머니즘을 부정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이러한 ‘해석’은 곧바로 중국의 비민주적·전체주의적 정치 체제와 연결되어, 류츠신의 창작을 중국 관변 이데올로기의 산물로 평가절하하는 근거로 사용되기에 이른다.

  이러한 ‘해석’의 유력한 근거로 거론되는 작중 인물이 바로 청신(程心)이다. 그녀는 인류의 운명을 한 손에 쥔 ‘검잡이’였지만, 깊은 인류애에서 비롯한 유약한 심성과 우유부단함을 삼체 세계에 간파당한 뒤 속수무책으로 인류를 삼체인의 지배 아래 떨어뜨린다. 앞서 말한 제3의 외계 문명의 공격도 어찌 보면 청신이 야기한 삼체의 침략에서 기인한다. 그녀는 삼체 세계에 ‘뇌’의 상태로 전송된 대학 동창 윈톈밍(雲天明)으로부터 지구를 보호할 방법이 감춰진 세 가지 이야기를 전해 듣는다. 그러나 평등과 안일주의에 빠진 인류는 그 방법들을 충분히 실행하거나 밝히는 데 실패하고, 삼체 세계와 태양계는 미지의 외계 문명으로부터 차례로 공멸한다. 인류는 이 거대한 파멸의 과정 속에서 비루하고 고집스러우며 이기적인 양태로 그려진다.

  이런 인물 장치는 민주주의와 휴머니즘의 무능력과 비효율을 고발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 민주적 분위기 속에서 인류는 지나치게 나태하고 낙천적이어서 사태를 직시하는 눈을 잃는다. 또한 인간 존재는 모두가 동등한 가치와 권리를 지닌 고귀한 존재이기보다 죽음과 고통 앞에서 비루하고 저열한 존재에 불과한 것처럼 보인다. 여기까지의 내용을 보면, 류츠신에게서 냉혹하고 비정한 현실주의자 내지 전체주의자의 모습을 떠올리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작품을 끝까지 읽어냈을 때 다시 흔들린다. 1890만년 후 우주의 한 외딴 공간에서, 청신은 관이판(關一帆)과 함께 최후의 인간으로 남겨져 안락한 소우주에서 새로운 인류의 싹을 틔울 기회를 얻게 된다. 그러나 이번에도 청신의 윤리적 책임감은 그러한 기회를 스스로 포기하고 우주 소멸을 막기 위한 무모한 실천을 감행하게 한다. 소설은 그녀의 새로운 모험이 성공적이었는지 밝히지 않은 채 막을 내린다. 류츠신은 어째서 그렇게 청신이라는 인물에 집착하는가? 작가에게 그녀는 단순히 민주와 휴머니티의 무력함을 보여주는 인물로 그려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는 인간성이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순결함과 희생정신을 나타낸다. 우주는 어둡고 냉혹하지만, 인간의 체온이 남아 있는 한 여전히 가능성과 희망의 공간이 될 수 있는 것이다.


3. SF적 세계가 전하는 아웃사이더들의 ‘(불)가능성’

  류츠신의 『삼체』를 위와 같은 의미로 읽어낼 수 있다면, 중국 SF의 또 한 명의 대가, 하오징팡(郝景芳)의 SF적 세계도 그리 이질적으로만 느껴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녀가 그리는 SF 세계 또한 류츠신과 마찬가지로 이미 파국이거나 혹은 빠르게 파국으로 치닫고 있지만, 권력과 재력으로부터 멀찌감치 소외된 가냘픈 인간 군상들은 저마다의 꿈속에서 소박한 행복과 인정의 따스함을 구하며 살아간다.

  가령 그녀의 소설집 『고독 깊은 곳(孤獨深處)』에 수록된 휴고상 수상작 「접는 도시(北京折叠)」는 쓰레기 처리공 라오다오(老刀)의 48시간 동안의 모험을 다룬다. 그는 거주자의 신분에 따라 세 개의 공간으로 구획된 미래 베이징의 최하층민 거주지(제3공간)에서 누군가에 의해 버려진 아이와 함께 살고 있다. 그는 아이의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 법적으로 엄격히 금지된 공간 이동을 감행하는데, 이로써 한 번도 경험해 본 적 없는, 같은 도시 내에 완전히 분리되어 존재하는 화려한 별세계와 그곳 주민의 실상을 목도한다. 그 과정에서 그는 여러 번 신분 노출의 위험에 봉착하기도 한다. 그러나 자신에게 맡겨진 임무를 마치고 천신만고 끝에 집으로 돌아온 그는 저항감이나 절망감에 휩싸이기보다 난방비 수금원과 옥신각신하는 옆집 여자에게 무심한 듯 도움의 손길을 내민다.

  또 다른 소설 「마지막 남은 용감한 사람(最後一個勇敢的人)」에 등장하는 클론들(쓰제47, 판눠32) 역시 세계의 변두리에 존재하는, 감시와 배제, 억압과 폭력의 대상으로 묘사된다. 작품은 ‘최후의’ 위험 인물로 여겨져 추격당하는 쓰제47이 폭발물 창고 안에서 판눠32를 인질로 삼아 자신을 좇는 이들과 대치하는 데서 시작된다. 쓰제47은 기성 권력에게 위협적인 ‘독립개체주의’ 이론을 창시한 인물의 마지막 클론이었다. 그런데 하룻밤 사이에 쓰제47은 창고지기인 판눠32에게 ‘독립개체주의’를 전하고, 이에 감화된 판눠32는 쓰제47의 유전자 정보를 모두 암기한다. 다음 날 새벽 쓰제47은 당국에 체포되어 제거당하지만, 판누32는 암기한 쓰제47의 유전자 정보를 후손 대대로 전한다.

  그 밖에도 『고독 깊은 곳』에서 독자들은 지구를 지배하려는 ‘강철족’의 도움으로 자신이 그토록 바라던 유명세를 얻지만, 나중에는 강철족에 맞서기로 결단하는 아주(阿玖, 「화려한 한 가운데(繁華中央)」), 촉망받는 젊은 교수였지만 자신을 일상의 노예로 전락시키는 학교를 ‘중성자탄’으로 파괴하려 하는 한즈(韓知, 「선산 요양원(深山療養院)」) 등 소외감과 고독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치는 가련한 인간 실존의 모습을 보게 된다.

  위와 같은 서사들은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는 세계에서 고집스럽게 가능성의 싹을 발견하고자 하는 인간 군상을 보여준다. 작품 속에서 그 가능성은 늘 소외와 고독을 수반하지만, 그 ‘불가능성’은 불가역적인 불가능성이 아니다. 그것은 ‘가능성’을 내포하는 불가능성, 즉 ‘(불)가능성’인 것이다. 그렇다면 그 ‘불가능성’의 천길 벼랑 위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린 가능성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다름 아닌 ‘인간’이다. 하오징팡의 소설에서 인간은 소외된 존재, 고독한 존재라는 바로 그 지점에서 고유의 아름다움을 드러낸다.

  하오징팡 소설의 이러한 주제 의식은 포스트휴먼 담론이 팽배한 오늘날 더욱 각별한 의미를 갖는다. 근대 과학은 절대적인 가능성의 세계를 인류 면전에 펼치려 했지만 번번히 끔찍한 폭력과 재난, 억압과 고통으로 귀착되곤 했다. 그러나 그것은 절대적 불가능성이 아니라, 다시금 인간의 가치와 의미를 각성/환기시키는 지평을 열어주었다는 점에서 ‘(불)가능성’이었다. 그러하기에 과학과 인간은 서로에게 가능성이자 불가능성이(었)다. 그것들은 서로에게 의존하고 또 서로를 제약하는 질긴 관계성을 나타낸다.

  즉 하오징팡의 소설이 보여주고자 하는 SF 세계는 결국 과학과 인간의 변증법이 형성하는 (불)가능성의 세계라 할 수 있다. 가능성의 세계 끄트머리에 불안하게 서 있는 인간이야말로 역설적으로 그 가능성을 개시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다. 인간은 늘 세계와 운명에 의해 소외되지만, 비틀거리며 그 소외를 딛고 운명 위에 걸터앉아 쉰 목소리로나마 과학과 인간의 가능성을 노래할 수 있는 존재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류츠신의 소설과 마찬가지로 하오징팡 소설의 가장 큰 주제 또한 휴머니즘이라 할 수 있다. 지금보다 훨씬 고도로 발달한 먼 미래의 과학 문명 속에서도, 가장 화려하게 빛나는 존재는 다름 아닌 인간일 것임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동서대학교 중국연구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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