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CEP 2.0 시대를 여는 열쇠:
부산-상하이-닝보 '디지털 원산지 증명 샌드박스' 제안
부산상공회의소 상근부회장 정현민
2025년, 세계 무역 질서는 거대한 격랑 속에 있습니다. 트럼프 행정부 2기의 출범과 함께 국제비상경제권법(IEEPA)을 위시한 관세 전쟁이 재점화되면서 WTO 중심의 다자주의는 위기를 맞았습니다. 이러한 불확실성 속에서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새로운 경제 버팀목으로 주목받는 것이 바로 RCEP(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입니다.
지난 11월 7일 개최된 '제10회 부산-상하이 협력 포럼'에서 저는 이 거대한 변화의 파고를 넘기 위해 동북아 물류의 핵심축인 부산, 상하이, 닝보 세 도시가 주도하는 '블록체인 기반 디지털 원산지 증명 샌드박스' 모델을 제안했습니다. 본 기고를 통해 RCEP의 잠재력을 현실로 만들 구체적인 실행 전략을 공유하고자 합니다.
1. 왜 지금 'RCEP 2.0'인가? : 위기 속의 기회
글로벌 공급망은 효율성 중심에서 안정성과 회복탄력성 중심으로 빠르게 재편되고 있습니다. 최근 조사에 따르면 전 세계 기업의 88%가 공급망 구조 재편을 계획 중이며, 절반 가까이가 생산지의 지역화(Localization)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는 역내 무역 협정인 RCEP의 중요성을 역설적으로 증명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습니다. 한중 간 전자상거래 규모는 폭발적으로 성장하여 2024년 기준 한국 전체 전자상거래 교역 중 중국 비중이 27.9%에 달했으나, 복잡한 원산지 규정과 서류 절차 탓에 기업들의 RCEP 실제 활용률은 한 자릿수에 머물러 있습니다.
우리는 이 병목 구간을 돌파해야 합니다. 기존의 관세 철폐를 넘어 디지털 무역 규범과 데이터 표준을 포괄하는 단계, 즉 'RCEP 2.0 시대'로의 진화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2. 해법: 블록체인과 규제 샌드박스의 결합
RCEP 활용률 저조의 주원인은 국가별로 상이하고 복잡한 종이 서류 중심의 원산지 증명 절차입니다. 이는 행정 부담과 위변조 위험을 동시에 야기합니다. 이에 대한 기술적 해법으로 **블록체인(Blockchain)**을 제안합니다.
블록체인은 신뢰할 수 없는 다자간에도 위변조가 불가능한 단일 분산원장(DLT)을 통해 제조, 인증, 검증의 단절된 과정을 하나로 연결하는 **통합 원산지 관리 프로세스(PRO)**를 가능케 합니다.
하지만 기술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국가 간 법규 차이와 데이터 주권 문제가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필요한 것이 바로 **'규제 샌드박스형 도시외교'**입니다. 국가 단위의 합의가 어려운 신기술 도입을 제도적 유연성을 갖춘 도시(부산 블록체인 규제자유특구, 상하이 자유무역 시험구, 닝보 전자상거래 종합시험구) 간의 실험을 통해 먼저 실증하자는 것입니다.
3. 최적의 파트너: 부산-상하이-닝보 트라이앵글
이 실험을 수행할 최적의 장소는 바로 부산, 상하이, 닝보입니다.
• 지리적 인접성: 세 도시는 해상 물류가 하루 만에 연결되는 '하루 생활권'으로, 상하이항(세계 1위), 닝보항(세계 3위권), 부산항(세계 7위권)이라는 압도적인 물류 인프라를 공유합니다.
• 산업적 상호보완성: 부산의 제조업(자동차/조선) 및 환적 허브 기능, 상하이의 금융 및 IT 플랫폼 역량, 닝보의 소재·부품 및 가공무역 특화 기능은 완벽한 공급망 클러스터를 형성합니다.
이러한 기반 위에 세 도시는 가장 현실적인 난관인 '데이터 장벽'을 넘어서야 합니다. 중국의 데이터 안전법과 양국의 개인정보보호법 충돌을 피하기 위해, 제한된 구역 내 예외적 데이터 공유를 허용하는 샌드박스 제도와 민감 정보를 암호화하는 **PET(프라이버시 강화기술)**의 이중 전략을 구사해야 합니다.
4. 실행 로드맵: '작게 시작하여 빠르게 학습하라'
우리는 총 5단계의 구체적인 실행 방안(Scaffolded Scaling)을 제시합니다.
1). 거버넌스 구축: 민관 합동 TF를 발족하여 데이터 표준화 요소를 도출합니다.
2). AI 플랫폼 개발: 3개 도시 인증기관이 참여하는 컨소시엄 블록체인을 구축하고, AI가 오류를 탐지하는 검증 모듈을 탑재합니다.
3). 파일럿 선정: 화장품, 자동차 부품 등 신속 통관이 필요한 품목을 선정해 시범 운영합니다.
4). 이중 검증 운영: 부산 기업이 블록체인에 업로드한 정보를 상하이 세관이 실시간 검증하는 시스템을 가동합니다.
5). 성과 평가 및 제도화: 통관 시간 단축 등 정량적 성과를 바탕으로 양국 정부에 RCEP 공식 제도로 건의합니다.
5. 결론 및 글로벌 함의: APEC 의제의 도시적 실천
본 제안은 단순히 세 도시의 물류 효율화에 그치지 않습니다. 이는 시진핑 주석이 APEC을 통해 제안한 아시아-태평양 경제의 핵심 의제들과 맥을 같이하며, 이를 도시 차원에서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실행 파일(Action File)입니다.

아래 표는 시진핑 주석의 APEC 제안과 본 포럼에서 제시한 부산-상하이-닝보 협력 모델의 정합성을 분석한 것입니다.
| 시 주석 APEC 제안 (핵심 의제) | 부산-상하이-닝보 협력 방안 (대응 조치) |
다자무역체제 수호 (WTO 중심 질서 강화) | RCEP 규범 실험: 도시가 블록체인 샌드박스를 통해 다자 통상 규범(원산지)을 선도적으로 이행하여 WTO+ 규범 강화에 기여 |
개방적 지역 경제 (역내 FTA 통합·FTAAP) | Tri-Port 개방 연대: 항만 간 연결성 강화를 통해 지역 경제 일체화를 가속하고, 향후 FTAAP의 인프라 모델로 제시 |
공급망 안정 연결 (물적·제도·인적 연결) | e-Express 해상 회랑: 공동 플랫폼을 통한 물적·제도적 연결 강화로 외부 충격에 흔들리지 않는 안정적 공급망 네트워크 형성 |
| 무역 디지털화·녹색화 | 무역 디지털화 실천: 전자 원산지 증명(e-C/O) 및 AI 스마트 통관 시스템을 통해 서류 없는 무역(Paperless Trade) 선도 |
포용적 보편적 발전 (격차 해소, 공동 번영) | 중소기업 포용성 강화: 복잡한 통관 절차를 자동화하여 대기업에 비해 정보력이 부족한 중소기업의 RCEP 참여 확대 및 공동 번영 실현 |
부산, 상하이, 닝보는 동북아 해양 벨트의 운명 공동체입니다. 우리는 국가 간 합의에 선행하는 '규제 우회 경로'를 개척함으로써, RCEP 활용률을 획기적으로 높이고 역내 무역 창출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습니다. **'속도, 인증, 신뢰'**가 흐르는 디지털 실크로드. 이것이 우리가 함께 만들어가야 할 RCEP 2.0의 미래입니다.
< 2026. Vol. 20
RCEP 2.0 시대를 여는 열쇠:
부산-상하이-닝보 '디지털 원산지 증명 샌드박스' 제안
부산상공회의소 상근부회장 정현민
2025년, 세계 무역 질서는 거대한 격랑 속에 있습니다. 트럼프 행정부 2기의 출범과 함께 국제비상경제권법(IEEPA)을 위시한 관세 전쟁이 재점화되면서 WTO 중심의 다자주의는 위기를 맞았습니다. 이러한 불확실성 속에서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새로운 경제 버팀목으로 주목받는 것이 바로 RCEP(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입니다.
지난 11월 7일 개최된 '제10회 부산-상하이 협력 포럼'에서 저는 이 거대한 변화의 파고를 넘기 위해 동북아 물류의 핵심축인 부산, 상하이, 닝보 세 도시가 주도하는 '블록체인 기반 디지털 원산지 증명 샌드박스' 모델을 제안했습니다. 본 기고를 통해 RCEP의 잠재력을 현실로 만들 구체적인 실행 전략을 공유하고자 합니다.
1. 왜 지금 'RCEP 2.0'인가? : 위기 속의 기회
글로벌 공급망은 효율성 중심에서 안정성과 회복탄력성 중심으로 빠르게 재편되고 있습니다. 최근 조사에 따르면 전 세계 기업의 88%가 공급망 구조 재편을 계획 중이며, 절반 가까이가 생산지의 지역화(Localization)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는 역내 무역 협정인 RCEP의 중요성을 역설적으로 증명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습니다. 한중 간 전자상거래 규모는 폭발적으로 성장하여 2024년 기준 한국 전체 전자상거래 교역 중 중국 비중이 27.9%에 달했으나, 복잡한 원산지 규정과 서류 절차 탓에 기업들의 RCEP 실제 활용률은 한 자릿수에 머물러 있습니다.
우리는 이 병목 구간을 돌파해야 합니다. 기존의 관세 철폐를 넘어 디지털 무역 규범과 데이터 표준을 포괄하는 단계, 즉 'RCEP 2.0 시대'로의 진화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2. 해법: 블록체인과 규제 샌드박스의 결합
RCEP 활용률 저조의 주원인은 국가별로 상이하고 복잡한 종이 서류 중심의 원산지 증명 절차입니다. 이는 행정 부담과 위변조 위험을 동시에 야기합니다. 이에 대한 기술적 해법으로 **블록체인(Blockchain)**을 제안합니다.
블록체인은 신뢰할 수 없는 다자간에도 위변조가 불가능한 단일 분산원장(DLT)을 통해 제조, 인증, 검증의 단절된 과정을 하나로 연결하는 **통합 원산지 관리 프로세스(PRO)**를 가능케 합니다.
하지만 기술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국가 간 법규 차이와 데이터 주권 문제가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필요한 것이 바로 **'규제 샌드박스형 도시외교'**입니다. 국가 단위의 합의가 어려운 신기술 도입을 제도적 유연성을 갖춘 도시(부산 블록체인 규제자유특구, 상하이 자유무역 시험구, 닝보 전자상거래 종합시험구) 간의 실험을 통해 먼저 실증하자는 것입니다.
3. 최적의 파트너: 부산-상하이-닝보 트라이앵글
이 실험을 수행할 최적의 장소는 바로 부산, 상하이, 닝보입니다.
• 지리적 인접성: 세 도시는 해상 물류가 하루 만에 연결되는 '하루 생활권'으로, 상하이항(세계 1위), 닝보항(세계 3위권), 부산항(세계 7위권)이라는 압도적인 물류 인프라를 공유합니다.
• 산업적 상호보완성: 부산의 제조업(자동차/조선) 및 환적 허브 기능, 상하이의 금융 및 IT 플랫폼 역량, 닝보의 소재·부품 및 가공무역 특화 기능은 완벽한 공급망 클러스터를 형성합니다.
이러한 기반 위에 세 도시는 가장 현실적인 난관인 '데이터 장벽'을 넘어서야 합니다. 중국의 데이터 안전법과 양국의 개인정보보호법 충돌을 피하기 위해, 제한된 구역 내 예외적 데이터 공유를 허용하는 샌드박스 제도와 민감 정보를 암호화하는 **PET(프라이버시 강화기술)**의 이중 전략을 구사해야 합니다.
4. 실행 로드맵: '작게 시작하여 빠르게 학습하라'
우리는 총 5단계의 구체적인 실행 방안(Scaffolded Scaling)을 제시합니다.
1). 거버넌스 구축: 민관 합동 TF를 발족하여 데이터 표준화 요소를 도출합니다.
2). AI 플랫폼 개발: 3개 도시 인증기관이 참여하는 컨소시엄 블록체인을 구축하고, AI가 오류를 탐지하는 검증 모듈을 탑재합니다.
3). 파일럿 선정: 화장품, 자동차 부품 등 신속 통관이 필요한 품목을 선정해 시범 운영합니다.
4). 이중 검증 운영: 부산 기업이 블록체인에 업로드한 정보를 상하이 세관이 실시간 검증하는 시스템을 가동합니다.
5). 성과 평가 및 제도화: 통관 시간 단축 등 정량적 성과를 바탕으로 양국 정부에 RCEP 공식 제도로 건의합니다.
5. 결론 및 글로벌 함의: APEC 의제의 도시적 실천
본 제안은 단순히 세 도시의 물류 효율화에 그치지 않습니다. 이는 시진핑 주석이 APEC을 통해 제안한 아시아-태평양 경제의 핵심 의제들과 맥을 같이하며, 이를 도시 차원에서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실행 파일(Action File)입니다.
아래 표는 시진핑 주석의 APEC 제안과 본 포럼에서 제시한 부산-상하이-닝보 협력 모델의 정합성을 분석한 것입니다.
(WTO 중심 질서 강화)
(역내 FTA 통합·FTAAP)
(물적·제도·인적 연결)
(격차 해소, 공동 번영)
부산, 상하이, 닝보는 동북아 해양 벨트의 운명 공동체입니다. 우리는 국가 간 합의에 선행하는 '규제 우회 경로'를 개척함으로써, RCEP 활용률을 획기적으로 높이고 역내 무역 창출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습니다. **'속도, 인증, 신뢰'**가 흐르는 디지털 실크로드. 이것이 우리가 함께 만들어가야 할 RCEP 2.0의 미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