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사회파 미스터리 드라마 읽기: 
쯔진천(紫金陈)에서 <만장적계절(漫长的季节)>까지


부경대학교 박은혜



1. 추리소설 작가 쯔진천과 사회파 미스터리 드라마

  최근 중국의 드라마는 다변화된 플랫폼과 형식을 통해 다양한 장르를 시청자들에게 선보이고 있다. 중국의 대표 드라마 장르 중 하나인 고장극(古装剧) 또는 역사극이 여전히 광범위한 인기를 구가하고 있지만, 현실을 배경으로 하는 미스터리, 로맨스, 청춘극, 일상극 등 여러 장르의 드라마가 점점 더 증가하는 추세다. 그 중 미스터리 장르의 성장도 주목할 만 하다.

  기존의 미스터리 드라마는 주인공인 경찰 또는 검찰이 폭력배 또는 마약 사범 등 사회 질서를 해치는 범죄자들과 맞서 싸우고, 정의를 수호하기 위한 과정을 묘사한 ‘공안수사극’이나, 『소년포청천(少年包青天)』이나 『신탐적인걸(神探狄仁杰)』처럼 역사추리극이 대다수였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 법정극, 범죄 심리극, 범죄 수사극, 액션 스릴러, 역사 추리극 등 다양하고 세분화된 미스터리 드라마가 등장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과거의 투박한 수사물에서 벗어나 세련된 미장센과 영화 같은 연출을 선보이며, 촘촘한 짜임새와 인물 설정, 논리적 전개 등 다방면에서 질적으로 성장하고 있다는 평을 받고 있다.

  플랫폼도 이러한 추세에 호응하여, 아이치이(爱奇艺)의 미우극장(迷雾剧场), 텐센트(腾讯)의 X극장, 유쿠(优酷)의 백야극장(白夜剧场)처럼 중국의 대표적인 동영상 플랫폼들은 미스터리 드라마 전문 채널을 만들어 미스터리 콘텐츠를 제공하고 있다. 또한 넷플릭스, 티빙 등 해외 OTT 플랫폼에도 중국의 미스터리 드라마가 업로드 되며 전 세계 시청자들과 만나고 있다.

  앞서 언급한 중국 미스터리 드라마의 하위 장르 중, 소위 ‘사회파 미스터리’가 작품성과 대중성을 겸비하여 대중과 평단으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사회파 미스터리’는 트릭 중심(수수께끼 풀기)의 추리소설(본격파 추리소설)과는 달리 범죄의 동기(배경)을 중시하는 소설인 ‘사회파 추리소설’로부터 파생된 개념이다. 범죄의 동기와 범죄자 심리를 사회적 맥락과 구조 속에서 탐색하고, 이를 통해 어떤 사회 또는 집단의 시스템과 구조가 야기하는 문제를 포착하는 작품을 가리킨다.

  중국의 사회파 미스터리 드라마를 이야기할 때, 추리소설 작가 쯔진천을 빼놓을 수 없다. 쯔진천의 추리소설 3부작 『나쁜 아이들(坏孩子)』, 『무증거 범죄(无证之罪)』, 『동트기 힘든 긴 밤(长夜难明)』은 각각 <은비적각락(隐秘的角落)>, <무증지죄(无证之罪)>, <침묵적 진상(沉默的真相)>이라는 제목의 드라마로 각색되면서, ‘사회파 미스터리’ 장르의 포문을 열었다.

  <은비적각락>은 가출한 미성년자 아이들이 우연히 범죄 현장을 목격하고, 범인이자 학원 선생인 장둥셩(张东升)을 협박하면서 이야기가 펼쳐진다. <은비적각락>의 서사는 일반적인 추리물의 문법처럼 범죄 사건의 범인 또는 배후를 밝히는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는다. 드라마 초반에 사건의 범인은 이미 시청자들에게 공개된다. 서스펜스는 범인을 협박해 돈을 뜯어내려는 아이들과 냉정하게 그 아이들을 뒷조사하며 문제를 해결하려 하는 범인 사이에 존재한다.

  장인 장모님을 죽이고 뻔뻔하게 아내를 위로하는 장둥셩의 인면수심과 그런 장둥셩의 범죄 행각이 드러나게 될 시점이 이 드라마가 시청자들을 붙잡아두는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은비적각락>은 기존의 중국 드라마에서 흔하게 볼 수 없었던 미성년 범죄, 형사 미성년자(촉법소년) 문제를 소재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중국의 실제 현실을 반영하는 비교적 강한 사회성을 드러낸다고 볼 수 있다.

  10여 년이 넘게 진실을 밝히기 위해 권력에 맞선 한 검찰관의 처절한 사투를 담은 <침묵적진상>은 치밀한 범죄 트릭과 기발한 반전 등 고전적인 추리 문법을 충실히 따르면서도 범죄를 저지르고도 처벌 받기는커녕 지위를 이용해 끊임없이 진실을 은폐하려 시도하는 관료의 추악함을 파헤친다. 하지만 소설에서는 주인공이 인생을 걸고 맞서 싸운 권력의 배후가 ‘거물’이었던 반면, 드라마에서는 중간 간부 정도의 개인적 일탈로 마무리되고, 결말 부분에는 검찰의 고위 관계자가 등장하여 검찰 집단의 과오를 반성하는 일장연설을 하는 장면이 부자연스럽게 등장한다. 두 작품은 모두 중국 사회의 어두운 면을 폭로하고 사회 문제를 탐색하지만, 범죄 동기에 천착하여 사회적 맥락을 반영시키거나, 범죄의 발생과 중국 사회의 구조적 문제와의 연결 고리를 깊이 들여다보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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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드라마 <만장적계절> 포스터]

<출처> bai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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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 드라마 <침묵적진상> 포스터]

<출처> baidu


2. 쇠락한 공업 도시와 옥수수밭 위에서 펼쳐지는 범죄 서사와 휴머니즘

  한편 ‘기나긴 계절’이라는 뜻의 <만장적계절> 역시 ‘웰메이드 사회파 미스터리’라는 거창한 수식어를 붙이기에 손색이 없는 작품이다. 2023년 중국의 동영상 플랫폼인 텐센트 비디오에서 공개된 후, 평점 사이트인 더우반에서 9점대의 높은 평점을 받으며 2023년 최고의 화제작으로 떠오른 바 있다.

  <만장적계절>의 시공간 설정은 비교적 명확한 편이다. 중국 둥베이(东北) 지역에 위치한 가상의 소도시 화린(桦林)을 공간적 배경으로, 과거인 1997년과 1998년, 현재인 2016년의 이야기가 교차하며 펼쳐진다. 2016년 화린시에서 택시를 운전하는 왕샹은 택시 번호판 사기를 당한 매부를 도와주다가 1998년 가을 발생한, 화린시를 대표하는 철강 제조 기업 화강(桦钢)의 철도 기관사로 일하던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지만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살인 사건의 실마리를 발견한다. 1998년 화강의 사택 단지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과 그 진상을 파헤치는 과정은 세 개의 서로 다른 타임라인을 연결하며 드라마의 서사를 추동한다.

  토막 난 사체가 화린 철강의 노동자 사택, 회사 근처 하수도와 강변 등 화린 철강 주변에서 발견되었지만, 화린 철강 회사의 경영난으로부터 비롯된 대량 해고와 실직이 <만장적계절> 속 범죄의 직접적인 동기로 작용하지는 않는다. 범죄 사건의 피해자와 가해자도 화린 철강의 직원이나 직원의 가족이 아니다. 범죄 사건 그 자체만 본다면 당시 급변하는 중국의 산업 구조가 야기하는 현실 문제와 관련이 없으며, 이를 비판하려는 목적도 선명하지 않다. 즉 범죄 사건이 중국 현대사회의 구조적인 문제에서 비롯되기보다는 개인의 차원에서 수렴되는 점을 부각시킨다. 범죄의 동기는 개인의 윤리, 인성의 문제로 귀결된다. 쇠락한 둥베이의 공업도시의 흥망성쇠가 유발하는 여러 사회적 문제들, 예를 들면 해고 노동자, 임금 체불, 산업 구조의 변화 등이 범죄의 직접적인 동기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만장적계절>에서는 산업 구조의 변화로 쇠퇴하는 철강 기업을 중심으로, 둥베이 지역의 변천사와 그곳에서 살아가는 ‘둥베이 사람들’의 이야기도 중요한 서사의 한 축을 지탱한다. 둥베이 출신의 작가와 감독은 둥베이 지역의 공통 기억을 소환하고, 그 척박한 땅에서 버텨온 둥베이 사람들의 고단한 삶을 위로한다. 드라마 곳곳에서 과거 대중매체를 통해 큰 인기를 끌었던 동베이 문화를 오마주한 요소들을 발견할 수 있다. 드라마는 정통한 둥베이 방언, 둥베이 지역의 음식, 광활하게 펼쳐진 옥수수밭 등 현실적이면서도 애정 어린 시선으로 둥베이 지역을 재현하려 애쓴다.

  주인공이자 평범한 소시민인 왕샹이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고 범인을 잡으려는 이유는 매우 실존적이다. 왕년의 ‘모범사원’ 수상까지 했던 그가 해고자 명단에 포함되자, 사건을 해결하는데 기여해 어떻게든 화린철강에서 살아남으려고 했던 것이다. 아버지에 이어 2대째 화린철강의 노동자였던 왕샹에게 화린철강은 곧 세계의 전부였다. 화린철강에서 제공하는 사택에서 태어나 평생을 그곳에 살며 화린철강에서 일하고, 아프면 화린철강 소속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게다가 왕샹이 계속 화린철강에 남아 있어야 대학 입시에 실패하여 미래가 불투명한 아들을 화린 철강에 취직시켜야 하는 부모로서의 중요한 임무도 남아 있었다.

  한편 드라마는 화린 철강 바깥에 머무는 삶에도 주목한다. 화린 철강이 오랫동안 경영난에 시달려 온 탓에 예전처럼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화린 철강의 노동자로 취업을 해야 할 화린시의 젊은이들은 일할 곳을 찾지 못하고 거리를 방황한다. 그들은 대낮부터 당구장이나 DVD방을 전전하고, 물건을 훔친다. 드라마 속에서 화린 철강 회사와 더불어 중요한 공간적 배경이 되는 곳은 빅토리아 나이트 클럽이다. ‘노동’과 ‘생산’의 공간인 화린 철강과 대조적으로, 빅토리아 나이트클럽은 ‘유흥’과 ‘소비’를 표상하는 공간이다. 또한 견고했던 화린 철강에 균열이 발생하면서 그곳으로부터 자의적 또는 타의적으로 탈주한 사람들이 모이는 공간이기도 하다. 화린 철강의 사장은 빅토리아 클럽에서 홍콩에서 온 사업가를 접대하며 회사를 매각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대학 진학에 실패한 왕샹의 아들 왕양은 빅토리아에서 웨이터 일을 하면서 아버지와는 다른 길을 가려 한다. 생계가 어려워진 화린 철강의 한 여직원은 빅토리아에서 접대부 일을 하며 아이를 키운다.

  이렇듯, <만장적계절>을 비롯한 중국의 사회파 미스터리 드라마는 범죄 사건을 통하여 중국 사회의 구조적 모순과 역사의 이면까지 포착하진 않는다. 대신 드라마가 주목하는 건 이를테면 가정에서 보호받지 못하고 거리를 떠도는 아이들의 서늘한 표정,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하면서까지 진실을 밝히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한 젊은 검사의 처절함, 과거의 사건을 함께 조사하며 끊임없이 티격태격하는 은퇴한 형사와 고집 센 노인의 우스꽝스러우면서도 눈물겨운 우정 같은 것이다. 이를 통해 보호받지 못하는 소외계층의 차가운 현실과 거대 권력에 맞서는 개인의 외로운 투쟁, 신산한 삶 속에서도 언뜻언뜻 보이는 유머와 정서적 유대감을 시청자들에게 전달하면서 중국만의 사회파 미스터리 드라마를 구축해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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