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서발터니티와 시민성



‘사상의 협동’ 시론 : 황석영의 『할매』를 읽고


 중국 절강해양대학 연광석 



  1. 새와 나무 사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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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석영의 『할매』를 읽었다. 대만이 부러워할 또 하나의 작품이 나왔구나 생각했다. 중국은 말할 나위도 없다. 물론 이는 한국 문학 또는 황석영이 대만 또는 중국의 문학 또는 작가보다 뛰어나다는 의미는 아니다. 문학이라는 것이 그런 비교의 대상이 되기도 어렵거니와 부러움을 사는 것이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닐 수도 있다. 문학 조건의 상이성은 성취의 차이를 낳는다. 그저 황석영 작품이 대만 또는 중국의 맥락에서 호소하는 매력이 분명하다는 점을 다시 확인하는 경험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소설은 ‘개똥지빠귀’라는 철새의 등장으로 시작한다. 하늘이라는 공간이 열린다. 당연히 국경과 같은 인위적인 장벽들이 존재하지 않는 공간이다. 철새들은 계절의 변화에 따라 이동하고, 반복하며, 순환한다.

‘할매’라는 이름의 육백년 묵은 팽나무는 땅과 단단히 접속해 있고, 철새들에게 먹이를 제공한다.


나무는 움직이지 않고 한자리에 있으므로 밤낮에 따라 계절마다 달라지는 햇빛, 바람, 비와 눈 

그리고 주변과 땅속의 모든 변화를 감지하고 대응하게 될 것이다. (『할매』, 34쪽)


  그리고 새처럼 날지 못하고 땅에 발을 디딛고 살 수 밖에 없는 인간은 이 팽나무를 신으로 모시고 옆에 기대어 산다. 팽나무 옆에 처음 정주한 ‘夢覺’은 순환을 완성하는 원형적 인간이다.


나보다 먼저 있고 나중에 없어질 할매여, 이제 내가 먼저 없어지네. 그는 한 때 그가 부지런히 잡아서 먹고 
몸의 일부분이 되었던 것들에게 자신을 보시하고자 했다. (83쪽)


  새는 나무 열매를 먹고, 씨앗을 품고 죽은 새는 나무가 된다. 나무와 함께 살며 갯벌의 해산물을 먹고 살아온 몽각의 몸은 죽은 후 갯벌속 칠게들에게 “큰잔치”를 열어주고, 칠게는 다시 새의 먹이가 된다. 몽각의 죽음은 생태주의적 삶의 완성이다.

  이러한 삶과 자연의 이상적 원형을 출발점으로 삼는 이 땅의 역사는 결국 이 원형을 닮아가고 또 회복하고자하는 인간의 노력과 추구로 점철되어 있다. 소설은 그 우여곡절을 저자가 20여년 전 환갑을 맞아 이야기했던 ‘西道東器’로 풀어내고 있다. 서도동기. 이는 대담자 최원식이 부연하듯이 ‘역설’적인 것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황석영은 말한다.


노장이 있고 공맹이 있고 부처님도 있다는 식으로는 안된단 말이죠. (중략) 타께우찌 요시미는 『방법으로서의 아시아』에서 루 쉰(魯迅)에 대해 얘기하면서 동양은 서양에 저항하고, 저항함으로써 거듭난 동양이 되면서 반성한 서양과 만난다고 하잖아요. 거듭난 동도가 세계를 제패한 서도를 반성시켜서 새롭게 규정한 서도, 그걸 동기에 담자. (중략)

그걸 어떻게 자신의 문화적 근거를 가지고 밑에서부터 끓어오르는 힘으로서 세계적인 보편성으로 되살려낼 것인가를 생각하는거죠. (중략)

내게는 먼저 동아시아 시민연대라는 집을 짓고 그 집을 베이스캠프로 해서 세계 속으로 나아가겠다는 꿈이 있습니다. (최원식, 임홍배 엮음, 『황석영 문학의 세계』, 60~62쪽).


‘거듭난 동도’가 새롭게 규정한 ‘서도’를 세계적인 보편성으로 되살려내는 노력의 끝에 『할매』가 있는 듯하다. 생태주의적 원형을 지키고 회복하고자 하는 인간의 역사는 팽나무 옆에 터를 잡은 당골네 무당집에서 시작되고, 동학에서 사상적 완성을 이룬다. 무당 작은연이의 아들 춘삼은 신을 모시는 일에 질려 ‘서학’을 받아들이지 못했지만, 동학도가 된 그의 아들 경순의 동학론을 받아들이게 된다.


우리 하늘님은 내 안에 들어와 나와 함께 있다니 얼마나 좋으냐. 
네 안에도 있고 느이 엄마 속에도 있고 저 밥에도 있다면서?
우리가 밥 먹으면, 하늘이 하늘을 먹는다네요? (157쪽)


  동학에서 다다른 세계적인 보편성이라는 이상은 100년이 지난 이후에도 갯벌 지킴이 배동수 및 유 방지거 신부와 같은 다양한 주체에 의해 계승된다.


  2. 陳映真과 황석영의 두 차례 만남  

  세계사적 변곡점을 통과하며 무수한 갈등, 충돌, 참상의 뉴스를 매일 같이 마주하고 있는 이 시대에 황석영 문학이 갖는 의미를 동아시아 사상사적 맥락에서 해석해보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아마도 그것은 ‘서도동기’라는 역설적 방법론으로 세계적 보편성을 향해 한발 앞서 나아간 황석영의 발자취를 의미화하는 하나의 경로가 될 것이다. 특히 대만의 陳映真은 이를 위한 매우 소중한 하나의 참조점이 된다.

  陳映真(1937~2016)은 대만과 중화권에서 ‘사상가’로 간주된다. 1968년 ‘민주대만연맹’ 사건으로 수감되기도 했던 그는 1975년 출옥 이후 소설가, 평론가, 잡지 발행인, 정치운동가, 사회운동가를 겸한 실천적 지식인으로 살았다. 일각에서는 魯迅 이후 그의 실천적 면모를 계승한 거의 유일한 대표적인 중화권 문인으로 간주되기도 한다. 2001년 말, 그는 스스로는 다른 계획이 있었겠지만, 이미 국역본으로도 출간된 바 있는 『충효공원』을 마지막 작품으로 남기며 창작 여정의 마침표를 찍는다. 그리고 이듬해 2002년 황석영을 다시 만난다. 1988년에 이어 14년만의 만남이다.

  그리고 2002년으로부터 23년이 지난 2025년 말, 황석영은 『할매』라는 어쩌면 그의 말년 대표작일 될 수도 있는 작품을 내놓았다. 대만과 한국을 대표하는 민중/민족 문학의 두 거장의 작품과 사상을 마주세워봄을 통해 위기의 시대를 돌파하는 ‘사상의 협동’의 방향을 모색해볼 수도 있지 않을까?


  2. 1 釣魚台와 전태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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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8년 대만에서 황석영을 만나기에 앞서 陳映真은 이미 1987년 6월항쟁을 서울에서 직접 체험했고, 한국 사회운동 전반에 대한 집중적인 인터뷰와 출판을 통해 한국에 대한 상당한 이해를 축적한 상황이었다.


황석영은 ‘아시아 제3세계 문학권’의 건설을 통해, 아시아 제3세계 국가 작가들이 서로 응원하고 공동 분투하여 
아시아 전체의 민중과 민족의 반제국주의 민족자유를 위해 노력하자고 강조한다.


  1988년, 황석영과 陳映真은 아시아와 ‘제3세계’를 매개로 의기투합했다. 당시 한국과 대만 모두 아직 냉전 체제에 놓여 있었고, 진보적인 지식인 사회는 제3세계 신식민지라는 인식을 일정하게 공유하고 있었다. 그런데 둘의 대화를 자세히 살펴보면 흥미로운 지점이 발견된다. 초청받은 작가이기 때문일수도 있지만, 황석영이 포괄적인 아시아와 제3세계를 전제하며 한국 상황에 대한 설명 또는 공통의 조건에 집중하는 반면, 陳映真은 ‘상이성’의 논리로 구체적인 한국 문학과 황석영 작품에 접근한다.


대만은 광복 이후 해협양안의 정치, 경제, 문화의 교류가 회복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한국의 식민지 경험과 다릅니다.( 『陳映真全集』 10권, 241쪽)


  이는 1945년 대만의 광복이 2차대전 전승국이었던 중화민국이라는 모체로 회귀함을 통해 일정하게 실질적인 탈식민 및 재중국화의 함의를 가졌다는 것으로, 陳映真의 표현에 의하면, 식민지에서 반식민지로 전환된 것이었다. 식민지 조선의 광복은 대내적으로 일정한 탈식민의 의미를 갖지만, 국제적으로 전승국의 지위를 누리지 못했고, 이는 신탁통치, 내전/분단, 전후 일본/미국과의 관계 등에서 잘 드러난다. 이와 같은 광복의 함의의 상이성은 전후 민족/민중 문학의 전개에도 심대한 영향을 끼친다.

  전후 리얼리즘적 문학 사조의 부흥과 관련해 두 작가는 선명한 대비를 이루는 사건을 언급한다. 게다가 두 사건은 모두 마침 ‘1970년’에 발발했다. 한국은 1970년 전태일의 분신사건, 대만은 1970년 ‘조어대 보위 애국운동’의 발발이 있었다. 이 ‘조어대’ 사건(1970년 미국이 오키나와의 일본 반환 계획을 밝히면서 역사적으로 중국 영토로 간주되었던 조어대열도를 포함시켜 발발한 애국운동)은 미국이라는 제국주의에 정치, 경제, 군사적으로 종속된 대만(중화민국)의 진상을 폭로했고, 대만과 홍콩 및 미국 등 세계 전역의 중국인들이 각성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를 계기로 문학 영역에서는 1970년대 현대시 논쟁 및 향토문학 논쟁 등이 발발하며, 사실상 모더니즘에 대한 비판과 리얼리즘의 부흥이 전개된다. 여기에서 우리는 한국과 대만의 리얼리즘을 추동한 관계 구조가 ‘민중→지식인’, ‘민족→지식인’으로 변별됨을 알 수 있다.

 

이 단계[1970년대 향토문학]는 한국 문학과 매우 다릅니다. 이 시기 한국 문학은 수확기였습니다. 
당신들은 민중문학, 민족문학의 이론을 제기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당신들의 강건한 학생운동, 자유화운동, 노동운동이 
이것과 관련된다고 생각합니다. (『陳映真全集』 10권, 247쪽)


  마지막으로 陳映真은 외세와 패권에 의한 국가의 분열, 민족의 분단 등 매우 많은 공통적인 측면이 있음을 확인하면서도 ‘상이’한 점을 더욱 강조한다. 그는 먼저 이론적 측면에서 ‘민중문학’ 뿐만 아니라, ‘민중신학’, ‘민중정치학’ 등 대만이 배워야할 부분을 언급하고, 실천적 측면에서 “당신들 지식인이 민중과 결합하는 점은 우리가 줄곧 해내지 못한 점입니다”라며 황석영과의 대화에서 크게 계발되었음을 밝히고, 특히 “우리는 영국, 유럽의 수많은 문인의 이름을 기억하지만, 이웃나라의 문화에 대해서는 낯설고, 황석영, 김지하와 같은 걸출한 작가들을 아는 사람은 적습니다. 이는 우리가 통절히 반성해야 할 지점입니다”라며 한국을 인식론적 서구중심주의 극복의 경로로 설정하고 있다.(『陳映真全集』 10권, 251쪽)

  이와 같은 양 갈래는 사실 민족주의 운동이 가졌던 기초의 상이성에서 유래한다고 볼 수 있다. 중국뿐만 아니라 대만에서도 기본적으로 민족자본의 경제적 뒷받침하에 민중적인 운동은 민족적인 운동과 결합되어 있었다. 1970년대 말 대만의 향토문학논쟁에서 陳映真을 비롯한 향토파들이 반공주의적 비판을 받았음에도 결국 국민당 내부 반대파의 지지와 엄호 속에서 최종적으로 승리하게 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상대적으로 ‘전태일’이 웅변하듯이, 식민지 조선과 분단하 한국의 민족주의는 민족자본의 뒷받침이 매우 열악한 ‘민중’적 민족주의로 전개된다. 이 과정에서 민중의 희생과 지식인의 참여가 도드라지고, 이를 문학화한 작품이 창작된다. 이는 陳映真을 비롯한 대만 사람 나아가 중국 사람의 부러움을 산다. 그러나 동시에 이는 민중적인 것이 민족적인 것으로부터 유리되고 ‘자립화’할 가능성 또는 위험성을 낳는다.


  2. 2 제3세계와 AALA  

  2002년, 14년 후의 재회에서 두 작가는 세계 인식 및 현실 인식에서 분명한 입장 차이를 보인다. 陳映真이 기존 입장을 고수 및 심화했다면, 황석영은 현실 변화에 적응하고 변화했다. 먼저 “제3세계”를 고수하는 陳映真과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 아메리카” 즉, AALA를 제시하는 황석영이 미묘하게 대립한다. 황석영은 지난해에도 군산에서 KAALA (Korea with Asia, Africa, Latin America) 문화재단을 설립에 참여하고 이사장에 취임하기도 했다.

  황석영은 냉전 종식으로 “제2세계”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제3세계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고 본다. “제 생각에 제3세계라는 어휘는 이미 의미가 없어졌습니다.”[1]라며 현실 인식을 명확히 한다. (『陳映真全集』 20권, 228쪽) 나아가 한국과 대만이 외부 간섭과 지배를 받는다는 점에서 제3세계적 특성을 갖지만, 냉전의 종식과 더불어 사회주의는 종료되었고, 제3세계 또한 존재하지 않으며, 사회주의적 명제의 유효성을 긍정하는 정도로 입장을 정리한다.


현실 사회주의는 이미 종료되었습니다. 그러나 사회주의적 명제는 아직 살아 있고, 활력있습니다. 
더 나은 자본주의를 위해 사회주의가 인류에게 던진 명제를 잊어서는 안됩니다.
(『陳映真全集』20권, 221~222쪽)


  한편 황석영은 이와 같은 세계인식의 전환에 따라 창작방법에 있어서도 변화를 꾀한다. 이 대담에서 황석영은 이미 다음해 최원식과의 인터뷰에서 제기할 ‘서도동기’를 예고하는 듯하다.


세계가 변화할 때, 세계 속의 사람도 따라서 변화합니다. 
당시 제가 생각한 것은 “리얼리즘적 내용을 동아시아의 형식에 넣자”였습니다.
(『陳映真全集』20권, 224쪽)


  황석영은 이제 식민과 냉전의 무게를 떨치고 과감히 세계적인 보편성으로 나아간다. 『할매』는 이와 같은 20여년 전의 적응과 변화가 숙성된 성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기실 20여년 전 陳映真과 황석영은 이미 자기 문학의 최종 목적지를 알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황석영과 달리, 식민의 후과, 냉전의 후과를 여전히 체감하는 陳映真은 ‘제3세계’를 내려놓지 못했다. 내부적인 것과 외부적인 것을 포함하여 스스로가 참여하여 만들어낸 변화가 아니라면 그 변화에 대한 적응은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것이 되기 어려웠다. 내전과 냉전에 의한 양안의 분단이 지속되고 있고, 대외의존적인 경제성장으로 인한 사회경제구조의 왜곡이 심화되고 있는 한, 陳映真에게 탈냉전은 탈식민과 마찬가지로 미완의 과제이고, 제3세계는 버릴 수 없는 개념이었다.

  그의 마지막 세 작품 「귀향」(1999), 「밤안개」(2000), 「충효공원」(2001)은 이와 같은 陳映真의 고투를 여실히 드러낸다. 「귀향」은 1990년대 말을 배경으로 과거 상해에서 국민당에 의해 강제징집 당해 국공내전에 참여했다 대만으로 온 외성인 병사, 그리고 대만에서 국민당에 속아 국공내전에 참여했다 포로가 되어 중국 대륙에 남은 대만 사람을 이른바 ‘탈냉전’ 시기 대만이라는 공간에서 마주세운다. 이 설정은 본성인과 외성인의 대립이라는 식민주의/국민주의적 동일성 정치의 허구성을 폭로하고 있다. 한편, 「밤안개」는 대륙에서부터 이어져 내려온 국민당 정보기관 요원들이 대만의 ‘민주화’ 과정 속에서 겪는 정체성 혼란, 나아가 정권교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양안의 분단과 긴장을 빌미로 ‘반공’을 공유하는 새 정권에서 그들이 존속하게 되는 과정을 묘사한다. 마지막으로, 「충효공원」은 2000년의 시점에서 과거 만주에서 일본과 협력하다 변절하여 훗날 국민당 정보기관의 요원이 되어 대만으로 건너온 외성인과 일제 강점기 일본군이 되어 남양군도의 전투에 참여했고, 일본이 패망하자 승리국의 병사가 되어 돌아온 본성인을 마주 세운다.

  이와 같은 간략한 인물구도을 통해서도 陳映真의 집착(?) 또는 강직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식민, 냉전, 분단은 여전히 현재적이다. 황석영처럼 가볍게 발돋움하여 세계적 보편성으로 나갈 용기가 그에게는 없다. 그러면 이와 대비되는 황석영의 유연 또는 성급(?)은 어떻게 보아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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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세계적 보편성’으로의 길  

  동아시아에서 탈식민의 길은 ‘反帝反封建’으로 압축되어 표현되어 왔다. ‘봉건’이 갖는 유럽중심주의적 한계를 지적할 수 있지만, 개별 국가/사회의 ‘전근대’가 갖는 내재적 모순에 대한 성찰과 비판으로 일반화해 선해할 수 있다.

  황석영은 본인이 언급한 竹內好와 유사한 방향으로 나아간다. ‘거듭난 東道’가 ‘西道’를 새롭게 규정한다고 할 때, 전자는 ‘反봉건’이고, 후자는 ‘反帝’가 된다. 이렇게 ‘서도동기’를 통해 세계적인 보편성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바로 “거듭난 동도”는 어떻게 가능한가이다. 동학은 거듭난 동도인가? 거듭남을 어떻게 인식할 수 있는가? 동학이 제시한 세계적 보편성으로서의 생태주의적 순환은 ‘아시아’라는 추상을 유지하는 가운데 얻어낸 거듭난 ‘자기’의 모습이다. 이 과정에서 ‘자기’ 모습을 확인하기 위한 타자와의 인식론적 원환은 끊어지고, 존재론적 도약이 감행된다. 이는 용감한 도약이다. 역사의 무게로부터 자유롭기 때문에 발걸음이 가볍다. 그러나 사상적 고투라기보다는 종교적 귀의다. 문학으로서 빼어나지만, 사상사적 입지에서 볼 때, 성급한 보편성이라는 불만을 살 수도 있는 대목이다.

  상대적으로 陳映真은 竹內好를 비판적으로 계승한 溝口雄三의 길을 걷는 것으로 보인다. 溝口雄三은 竹內好의 추상적인 ‘아시아’에서 구체적인 ‘중국’으로 내려온다. 그는 일본의 基體를 인식하기 위해 중국을 구체적인 ‘방법’으로 삼는다. 陳映真은 황석영의 ‘거듭난 동도’처럼 자기 안에서 얻은 기준으로 세계사적 보편성을 규정하려는 시도가 기존의 보편/특수적 틀로부터 자유로운지 묻는다. 그래서 陳映真은 溝口雄三처럼 ‘상이성’의 논리로 일관한다. 그는 한국에 대한 무지를 반성하고, 한국의 우수함으로부터 배우려한다. 陳映真에게 ‘거듭난 동도’는 구체적 아시아, 즉 한국을 경유한 구체적 자기다. 그러나 이러한 인식론적인 원환 안에서 보편성은 무한히 지연된다. 그렇지만 이와 같은 상이성에 근거한 자기인식의 축적과 심화는 역사적 무게를 갖는 사상으로 응축되고, 변화를 쉽게 용인하지 않는 안정성을 형성한다. 이와 같은 역사적 무게를 느끼는 지식인의 발걸음은 가벼울 수 없다. 변화를 만들기도 쉽지 않지만, 변화에 휩쓸리지도 않는다.


  4. 결어 : 사상의 협동을 위하여  

  20년 가까이 한국과 대만을 오고가며 맺은 인연이 적지 않다. 양측의 학술사상, 사회운동 및 문화예술에 대해 관찰한 바, 흥미롭게도 한국과 대만은 서로 부러워하는 관계다.

  문학과 사상으로 좁혀보면, 대만은 황석영 및 그의 문학 작품의 존재를 부러워한다. 한국은 대만에 비해 상대적으로 무관심하지만, 陳映真과 같이 魯迅을 잇는 사상가의 존재를 부러워한다. 물론 사례는 이로 한정되지 않는다.


동/서의 마주섬에서 동이 서를 배타하는 것이 한문체요 서가 동을 집어삼킨 것이 국문체라면 
동과 서가 최소한의 긴장을 놓지 않으면서 진지한 대화를 견지하는 것이 국한문체라고 해도 좋다.
(최원식, 『제국 이후의 동아시아』, 213~214쪽)


  동과 서의 긴장은 우리 문학의 존재론적 조건이다. 이 조건은 분명히 동아시아의 타자들과 다르다. 일본과도 중국 또는 대만과도 다르다.  동과 서 사이의 긴장이 가장 첨예한 곳이다. 그러나 주어진 조건을 무시하지 않으면서도 더 많은 가능성을 포용하는 문학 장역의 ‘아시아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기실, 한국 문학, 특히 황석영 소설이 담는 민족적인 것의 높이는 상대적으로 낮다. 문학이 민중적인 만큼 민족적인 것에 얽매이지 않는다. 이는 민족경제론을 주창했던 박현채가 늘상 강조했던 ‘민족적인 것이 민중적인 것이고, 민중적인 것이 민족적인 것’이라는 당위와는 모순된다. 그러나 20세기적 국가주의와 세계주의 사이, 또는 민족국가적 경계 너머의 중간지대를 상상하는 문학이라면 ‘민족=민중’론의 완성 또한 개별 국가/사회의 고립된 과제로 맡겨두지 않고 적극적인 동아시아 분업 모델을 취할 수도 있을 것이다. 대만과 한국의 문학이 서로 민족적인 것과 민중적인 것이라는 양 편향으로의 자립화를 억제하면서 상호보완적인 협동전선을 형성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동아시아’라는 근래 퇴조하고 있는 소통 장소의 재활성화가 급선무이다.

동서대학교 중국연구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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