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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는 『삼국지』를 읽고 있을까?

글_ 국립부경대학교 HK연구교수 이민경

  예전 한 모임 자리에서 초등학생 자녀를 둔 지인이 “어떤 『삼국지』를 사주면 좋을까요?”라는 질문을 던졌다. 그 말이 끝나자마자, “○○○ 작가가 펴낸 정역본을 읽혀라”, “아니다, 흥미를 붙이는 게 중요하니, 재미로는 더 나은 △△△ 작가의 평역본을 사줘라”, “만화 삼국지도 괜찮은 게 많다, 예를 들면......” 등등, 자리에 함께 하고 있던 사람들이 너도나도 한마디씩 거들면서, 서점에서 만날 수 있는 각종 『삼국지』가 언급되었다. 그리고 곧, 진수가 편찬한 정사 『삼국지』, 최훈의 『삼국전투기』나 무적핑크의 『삼국지톡』, 『이말년 시리즈』의 삼국지 단편 등의 웹툰이나 웹소설, TV와 라디오 드라마, 영화, 애니메이션에서부터 게임 그리고 유투브 방송까지, ‘초등학생이 읽을 삼국지’ 추천하려던 애초의 목적은 오간 데 없이, 자신의 ‘최애’ 삼국지 콘텐츠를 소개를 하는 장이 되어 버렸다. 그 모임에 있던 사람들 대부분이 문학 전공자도 아니었는데...... ‘도처에서 삼국지 덕후들이 암약하고 있다’라는 평소 지론이 다시금 강화된 자리였다. 

  아마도 이러한 경험은 필자만 겪은 게 아닐 것이다. 이문열 삼국지만 해도 1,800만 부 이상 판매되었다 하고, 박종화, 김구용, 정비석, 이문열, 황석영, 장정일 등 우리나라에서 내로라하는 작가들도 자신의 이름을 내건 정역본, 평역본 등을 출간한 적 있으며, 지금도 필독서 목록에서 당당히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니, 우리나라에서 『삼국지』를 읽어 본 사람의 수가 얼마나 많겠는가? 독자의 수가 많은 것에 비례하여, 마니아의 수도 상당하다. 우리네 삼국지 마니아들은 각종 『삼국지』를 읽고 비평하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이전에 없던 삼국지 관련 콘텐츠들을 만들어 끊임없이 세상에 내놓고 있다. 그들의 창작물은 이후 출간될 새로운 『삼국지』의 창작의 원천으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애초부터 『삼국지』라는 소설은 다양한 자료를 토대로 삼아 재구성하고 다듬어서 나온 작품이니 말이다. 


소설 『삼국지』라는 책

  소설 『삼국지』의 가장 이른 판본으로 알려진 명 가정본(嘉靖本)에는 “진 평양후 진수의 역사 기록을 후학 나관중이 차례에 따라 편집했다(晉平陽侯陳壽史傳, 後學羅貫中編次)”라는 기록이 있는데, 소설 『삼국지』는 천재 작가 1인의 독창적 창작으로 완성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가정본 『삼국지통속연의』



  원말명초를 살았던 나관중은 진수의 역사서 『삼국지』에 근본을 두고, 배송지(裴松之)의 주석, 위진시대 지괴· 지인소설 및 설서인(說書人)의 화본(話本), 잡극, 『삼국지평화(三國志平話)』와 같은 민간문예 등 이전의 기록을 취사선택하고 자신의 창작을 보태어 작품을 완성하였다. 가정본 이후 쏟아진 수많은 삼국지 판본을 누르고 출판 시장을 평정한 ― 대부분의 국내 정역본의 저본인― 모종강본(毛宗崗本) 역시 마찬가지다. 모종강은 나관중이 그러하였던 것처럼 자신의 ‘창작의도’에 따라 가정본의 내용을 삭제하거나 새로운 내용을 추가하였다. 만주족이 통치한 청나라 때 세상에 나온 모종강본은 가정본에 비해 봉건 정통 사상이 한층 더 강화되어 ‘擁劉貶曹(유비는 옹호하고 조조를 폄하함)’의 경향성이 더욱 커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세상에 나온 모든 소설 『삼국지』는 역사에 대한 재해석의 결과물이다. 작가는 전작과 다른 관점으로 지나간 역사를 회고하기 위하여, 이전의 자료들을 새로 검토하고, 자신의 가치관에 입각하여 그것을 선별하고 재구성한다. 가치관은 개인의 타고난 성정이 외부 환경과 접촉하고 충돌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정립되는 것이니, 작가의 가치관에 따라 완성된 신작에는 그가 살아가는 사회의 분위기와 시대정신이 녹아있다. 


지금 우리가 읽어내는 것

  시대에 따라 『삼국지』를 보는 관점은 변화하였다. 처음 한반도에 유입되었을 때, 조선의 유학자들은 이 책이 “아주 터무니없고 황당무계(甚多妄誕)”하고 “잡스럽게 뒤섞여 무익할 뿐 아니라 도리를 해친다(非但雜駁無益, 甚害義理)”고 부정적으로 평가하였다. 하지만 17세기 대명의리론이 강화된 이후에는 ‘교화서’로 바라보았고, 18세기 이후에는 ‘오락서’로 인식의 전환이 이루어졌다. 일제 강점기에는 민족의식, 항일의식을 고취하고 독립의 의지를 강화하는 데 도움이 되는 책으로 바라보았고, 1990년대 이후에는 대입 시험 성공을 위해서 반드시 읽어야 하는 책이 되었다. 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기술과 산업의 발전 속도가 빨라진 21세기, 우리는 어떤 관점으로 삼국지를 읽고 있을까? 


  

출처: 네이버카페 삼국지도원결의 자유게시판  



  위의 그림은 한 인터넷 커뮤니티의 게시물이다. 작성자는 소설 『삼국지』의 등장인물 두 사람 중 상대적으로 거부감이 심한 유형을 고르라고 한 뒤, 보기로 “동반 출장 중 자기 침대에서 같이 자자고 하는 유비”와 “중요한 프로젝트가 있을 때마다 눈 아프다고 병가내는 팀원 or 상사 하후돈”을 제시하였다. 

  역사서 『삼국지』의 “寢則同牀 (잠자리를 같이 하였다)”는 유비와 관우, 장비 사이의 신뢰와 유대의 돈독함 정도를 짐작할 수 있는 실마리가 되었는데, 소설 속에서 ‘도원결의’의 모티브가 되었고, 유비·관우·장비를 의형제로 구성하고 궁극적으로는 유비의 영웅성 구축에 일조하는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지금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관점으로 이를 바라보고 새롭게 활용하고 있다. 작성자는 유비를 업무 외 시간에도 함께 시간을 보내자고 요구하는 등 휴식 시간을 전혀 보장해주지 않는 상급자의 모습으로 환치시켰다. 즉 ‘악덕상사 유비’로 희화화하는 모티브로 작용한 것이다. 



과거

   寢則同牀 → 신뢰와 유대의 표현 → 도원결의 → 어질고 의로운 형님 → 영웅

현재

   寢則同牀 → 업무종료 후 추가노동 → 휴식시간 미보장 → 악덕상사 → “극혐”



  이 외에도 온라인 공간에서는 원술은 “꿀물황제”, 마속을 “등산왕”으로, 손권을 “손제리”로 칭하는 등, 삼국 인물을 희화화하여 재해석하는 경우가 흔하게 보인다. 

  획일화된 지배원리, 통일된 관념이 거부되고 기존의 주류 이데올로기가 해체되는 포스트모더니즘 시대를 사는 지금의 대중들은 삼국 인물들을 ‘영웅’으로 추앙하기보다는, 오히려 그들의 권위나 위계를 탈각시켜 패러디의 대상으로 애용한다. 개개인이 생각하는 영웅상이 다르고, 어쩌면 영웅론을 설파하는 것 자체가 고루한 일이 되어버린 지금, 상당수의 사람들은 소설 『삼국지』에서 영웅을 찾기보다는, 그들을 풍자하고 희화화하는 데에 더욱 큰 재미를 느끼는 것 같다.


  

 출처: 네이버카페 삼국지도원결의 자유게시판   



  봉건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은 관우를 ‘의절(義絶)’이라 칭송하였다. 유가 사상이 통치 이데올로기였던 시절의 독자들은 관우라는 인물로부터 忠·義를 읽어냈고, 충과 의는 봉건 질서를 유지하는 데에 유용한 관념이었기에 그는 긍정적 인물, 영웅으로 추앙받았다. 하지만 요즘 관우는 “관푸치노(관우와 카푸치노를 합성한 조어, 우유 거품이 얹어진 카푸치노처럼 관우의 명성은 부풀려진 것이라는 의미로 사용됨)”, “허언증”, “분노조절장애”, “꼰대” 등으로 불리고 있다. 

  관우에 대한 평가가 달라진 것은 시대가 요구하는 가치가 변화했기 때문일 것이다. 현재를 살아가는 독자들은 유비에게 충과 의를 지켜온 관우의 품성보다는 그의 ‘실패’에 더욱 주목한다. 그들은 관우의 오만한 태도와 정치, 외교적 능력 부족 때문에 촉한이 형주를 잃었을 뿐 아니라 촉한과 동오의 동맹이 파탄난 것으로 본다. 또한 관우의 사망이 이릉대전의 도화선이 되었기에, 촉한이 천하통일을 실패한 것에는 관우의 책임이 크다는 것이다. 즉 관우의 과오가 천하통일이라는 과업이 좌절되는 데 결정적 계기가 되었으니, 관우는 영웅이 아니라는 것이다. 

  

   대단한 영웅이 등장하면 난세를 평정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믿음이 있었던 과거의 독자들은 삼국지를 읽으며 등장인물들의 영웅성을 찬양하고 또 그것을 체득하려 노력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는 소설 『삼국지』의 인물들을 크게 동경하지 않으며 그들의 영웅성을 인정하지 않으려 하는 경향성도 점점 커지고 있다. 더 이상 『삼국지』를 영웅들의 이야기로 읽어내지 않는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과정보다는 결과만 중요한 경쟁사회, 성과의 유무로 인간의 가치를 판단하는 성과주의 사회, 각자도생이 시대정신처럼 되어 버린 현실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싶어 씁쓸한 마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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