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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중국의 온전한 자기 이해를 엿보다

류젠쥔(劉建軍)·천저우왕(陳周旺)·왕스카이(汪仕凱) 지음, 
『중국식 현대화의 논리』(산지니, 2024)를 읽고 


글_ 푸단대학교 국제관계와 공공사무학원 

박사후연구원 김미래

  방대한 분량을 자랑하는 속칭 ‘벽돌책’을 마주하는 일은 누구에게나 쉽지 않은 도전이다. 직업으로서 학문을 하는 이라고 해도 ‘양적 충격’ 앞에서 맥을 못 추기는 마찬가지이다. 다만 책의 집필 배경과 내용 전반을 관통하는 기조를 이해하게 되면 독파에 한걸음 다가설 수 있다는 귀띔 정도는 허락되지 않을까 한다. 책의 기조는 바둑의 축선과도 같다. 축선을 바탕으로 전체적인 형국이 가늠되는 것처럼 행간에 반영된 기조를 파악할 수 있다면 책의 의도와 내용을 꿰뚫을 수 있다. 

  다행히 『중국식 현대화의 논리』는 1·2권으로 구성된 방대한 분량에도 불구하고 매우 뚜렷한 기조를 지닌 책이며 머리말과 1장을 할애해 그 기조에 대한 투철한 설명까지 제시하고 있다. 머리말에서 밝히고 있는 것과 같이 이 책의 목적은 현대 중국의 사회주의 정치학 자체를 대상으로 그 기본적인 명제와 원리를 집약하는 데 있다. 따라서 서구 주류 정치학의 이론이나 개념에 의존하지 않고 중국의 독자적인 담론력을 구성하려는 자주적이고 능동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특히 “정치의 취지는 가치의 권위적 배분이 아닌 인민의 좋은 삶을 조성하는 데 있고, 경제는 이익의 최대 추구가 아닌 세상을 경영하고 백성을 구제하는 경세제민(經世濟民)이며, 문화는 우월한 지위를 과시하는 패권이 아닌 인간과 자연, 인간과 인간의 공생의 산물이다”라는 서술에서는 기존 개념의 타성을 타파하고 재발명하려는 학술적 패기가 묻어난다. 



 출처: 도서출판 산지니



  현재 중국의 정치학계에서는 중국의 언어와 맥락, 체계로 정치를 논하는(讓政治學講中國話) 자주적인 지식체계를 구축하는 움직임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류젠쥔, 천저우왕, 왕스카이 등 푸단대 정치학과를 대표하는 유수의 학자들이 함께 집필한 『중국식 현대화의 논리』 의 출간은 그 물꼬를 트는 계기가 되었다. 중국이 스스로의 방법론을 강조하는 흐름은 새삼스럽지 않으나, 최근의 자주적 지식체계 구축 움직임은 18차 당대회 이후 강조된 노선·이론·제도·문화 4가지 자신감에 학술적으로 호응하려는 본격적인 시도로 읽힐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다. 이는 중국을 설명하는 기존의 비교정치·비교정치경제학적 틀―예컨대 중국모델, 동아시아 발전국가 모델, 조합주의 모델 등―에 머물지 않고 한층 더 나아가 “중국학”에 가까운, 총체적인 분석체계를 구축하고 제공하려는 야심 찬 시도라고 평가할 만하다. 중국이 하나의 문명체로서 설명‘되는’ 대상에서 설명‘하는’ 대상으로 자리매김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러한 움직임은 지식의 식민화에서 자유롭지 못한 한국에도 시사하는 바가 있다고 하겠다.

  이 책의 원제가 『정치논리: 현대 사회주의 정치학(政治邏輯:當代中國社會主義政治學)』임을 상기한다면 ‘중국식 현대화’에 대한 정치적인 접근과 서술이 이 책의 본질임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주저자인 류젠쥔 교수가 한국어판 출간기념회에서 밝힌 바와 같이 현대 중국은 정치가 매우 ‘발달’―‘과잉’에 대한 중국적 은유로 해석된다―한 나라이기에 정치를 통해 중국을 이해하는 것은 불가피한 선택이다. 정치를 논하지 않고는 중국의 많은 것들이 설명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책의 비유에 따르면 정치는 중국식 현대화의 연료이며 그러한 정치를 주도하는 가장 핵심적인 역량으로서 중국공산당은 엔진의 역할을 한다. 이 책은 정치적으로 과잉된 환경에 놓인 현대 중국의 철저한 자기 이해를 여과 없이 보여준다는 점에서 해외 중국학자의 저작과 차별화된 가치를 갖는다.

  ‘중국식 현대화’는 이 책이 자주적 지식체계에 의거해 논하고자 하는 주요 테제이다. 이쯤에서 우리는 왜 중국‘의’ 현대화가 아닌 중국‘식’ 현대화인가 라는 의문을 제기해 볼 수 있다. 단 한 글자 차이일 뿐이나 그 의미와 무게는 판이하다. 중국'의'라는 소유격으로 수식되게 되면 중국의 발전 경험은 자국에 국한된 하나의 지역성 사례에 불과하게 된다. 중국‘식’은 이러한 중국‘의’ 한계를 넘어 보급과 전파를 염두에 둔, 하나의 표준으로서의 가능성을 피력하는 표현이다. 동시에 기존에 사용했던 (중국)노선이나 경험이라는 용어가 아닌 현대화라는 거대 담론을 과감히 채택함으로써 현대화에 대한 서구의 지식패권을 해체하려는 의도도 엿보인다.

  현대화란 다원적으로 고찰될 수 있으나, 어떠한 차원에서도 퇴보가 아닌 진보를 내포하고 있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을 듯하다. 이렇게 본다면 결국 현대화란 '문명의 더 바람직한 방향으로의 이행'1)을 함축한다고 할 수 있겠다. 논쟁과 토론이 발생하는 지점은 ‘바람직한 방향’에 대한 시각 차이에 있다. 이 책은 현대 중국이 그 바람직한 방향을 모색하는 데 있어 줄곧 사회주의라는 가치를 호지(護持)하고 있음을 강조한다. 우리는 국가 자본주의, 중국 특색의 신자유주의 등 현대 중국과 중국공산당에 가해지는 적잖은 비판에 침식된 나머지 사회주의가 현대 중국의 자의식을 형성하는 주된 의식 체계임을 종종 망각하고는 한다. 자기 이해에 외부의 승인이나 검증이 필수적인 것은 아니다. 예컨대 한국인의 정체성 형성에 이바지하는 단일 민족이라는 요소를 생각해 보자. 민족의 단일 여부가 생물학적·인류학적으로 엄밀히 검증되지 않았음에도 더 나아가 민족 자체가 상상의 공동체라는 문제가 제기된 지 꽤 오래임에도 여전히 단일민족이라는 인식은 한국인의 자의식 한 귀퉁이에 머물러 있다. 또 다른 예로 과거 국유기업 민영화를 가열히 추진했던 주룽지(朱鎔基) 전 총리는 ‘중국의 고르바초프’라는 외신의 비유에 매우 불쾌해했다고 한다. 민영화를 추진해도 그는 '중국의 주룽지'였고 중국공산당을 대표하는 조직인격(組織人格)이었던 것이다.




 출처:  『중국식 현대화의 논리』 1 (산지니, 2024), p.23



  요컨대 사회주의는 외부의 시선과 관계없이 ‘여전히’ 현대 중국의 자기 이해를 구성하는 핵심 이데올로기이며, 당의 전면 영도를 가능하게 하는 정치 과잉 풍토의 사상적 배경이다. 다만 이 책 전체에서 부단히 강조하는 사회주의는 생산수단의 사회적 소유나 계획경제와 같은 고전적 도그마에 집착하는 그것이 아닌, 이른바 '유기적 통일의 정치'를 구현하는 사회주의이다. 필자는 이를 ‘통섭(統攝)’의 매력을 지닌 사회주의라 일컫고자 한다. 통섭의 사회주의는 세계의 변혁을 지향하는 마르크스주의의 실천적 성격과 중국 전통의 경세치용 정신의 내적 정합이 빚어낸 산물이다. 중국 사회주의의 통섭력은 불완전변태의 중국 혁명을 가능하게 하였으며 사회주의 시장경제를 발명해 냈고, 중국공산당의 전면 영도와 기층에서 민의의 지속적 표현을 실현하는 전과정 인민민주의 공존 국면을 빚어냈다. 인민의 좋은 삶이라는 정치의 근본 취지에 부합하고 중국 전통의 합일(合一) 문화와 사회주의 특유의 집체주의 사고에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면, 나아가 거시적으로 볼 때 중국이라는 문명체를 보다 나은 방향으로 향하게 한다고 판단되면 일견 양가적으로 보이는 요소들마저 모두 한 데 수용하는 통섭의 사회주의, 이것이 중국식 현대화를 가능하게 한 현대 중국의 정치 논리이다. 

  『중국식 현대화의 논리』는 역사와 현실, 이론과 실천, 중국과 세계, 패러다임과 경험적 근거라는 4중 차원에 걸친 양가적 요소들의 상호 영향 속에서 성숙하는 현대 중국정치를 조망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적합한 책이다. 아울러 이 책은 분절(分)과 통합(合), 정치체제(政治體制)와 정치도리(政治道理)를, 정당성(合法性)과 합도성(合道性), 시민(市民)사회와 업민(業民)사회, 선거와 협상 등 줄곧 서구와 중국을 대별하면서 이른바 보편으로 수용되는 이론과 제도 및 서구화=현대화/서구화=선진화라는 도식에 대한 우리의 성찰을 초대하고 있다.

  만약 독자가 철저히 효용론적 관점을 취해 사회주의 문법 특유의 감읍벽을 심상히 여기고 과도한 자주성의 발현이 빚어낸 중국 중심주의, 중국 예외주의의 함정에서 지혜롭게 비켜나 책의 축선을 꿰뚫을 수 있다면 이 책을 통해 현대 중국의 자기 이해를 일목요연하게 살펴 그 명과 암을 모두 감지할 수 있는 시좌를 얻게 될 것이다. 예컨대 중국의 토지 소유권은 왜 이리도 모호한가, 중국은 왜 막대한 자원을 쏟아부으면서까지 기어코 탈빈곤이라는 정치적 이벤트를 달성했는가, 중국은 왜 민간경제 활력 위축이라는 부작용을 부르면서도 공동부유라는 기치를 포기하지 못하는가와 같은 문제에 대한 나름의 답을 찾을 수 있다.

  『중국식 현대화의 논리』는 기조가 뚜렷한 만큼 한계도 뚜렷한 책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이 책은 현대 중국의 ‘통섭’의 사회주의 정치를 가능하게 한 양대 요소로 마르크스주의와 전통문화에 천착한다. 그러나 현대 중국이 건국 과정에서 이뤄낸 마르크스주의의 중국화, 문화적 단층을 겪지 않은 초장기의 역사에 걸쳐 축적된 전통문화는 그 자체로 특수하고도 예외적인 경험이고 유산이기에 이것만으로는 세계와 접점을 구축하기 어렵다. 그러한 의미에서 보면 이 책 또한 결국 중국‘의’ 현대화에 대한 보다 체계적인 서사에 그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중국‘의’ 현대화가 중국‘식’ 현대화로 승화하려면 보다 큰 동력과 설득력을 확보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서구세계 전체를 일반화하고 이에 대한 터부로 일관하기보다는 중국이 초극하고자 하는 기존의 현대화 모델과 노선 내부에서 이것을 반성하고 극복하고자 하는 다양한 갈래의 문제의식과 운동을 탐색하고 이것과의 결합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예컨대 동아시아 내부의 이른바 ‘서구화’된 국가인 한국과 일본에 주목한다면 한일 내부에는 신자유주의에 의해 재편된 사회, 공공성의 위기, 기후 위기에 대한 어떤 문제의식과 대책이 제시되고 있는가를 살피고 더불어 해낼 수 있는 지점과 방향을 강구하는 것이다. 향후 이 책의 보완이 이러한 연대의 방향에서 이루어진다면 단순한 서구의 안티테제에서 벗어나 대안으로서의 중국식 현대화의 정립에 한층 다가설 수 있지 않을까 한다.


1) John Bagnell Bury, The Idea of Progress: An Inquiry into Its Origin And Growth(Legare Street Press, 2021), p.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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