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양회에서 관찰된 중국의 대외정책과 한중관계
동서대학교 신정승
1. 양회에서 관찰된 중국의 대외정책
2025년 양회(전국인민대표대회와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가 지난 3월 4일부터 11일까지 베이징에서 개최되었다. 금번 양회도 국무원 총리에 의한 전년도 업무실적과 금년도 경제성장 목표 등 경제 운용을 포함한 정부 업무에 대한 보고가 있었으며, 예산안에 대한 승인도 이루어졌다. 정부 업무보고에서는 전체적으로 안정과 지속성을 중시하면서 국내 소비 진작을 위한 조치들과 더불어 국가안보를 염두에 둔 과학기술 혁신 등이 강조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이에는 중국이 당면한 경제적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시진핑이 제기한 쌍순환 경제정책과 신질생산력을 중심으로 하는 경제 운용 방식에 대한 중국 지도부의 자신감이 그 바탕에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다만 2023년 이후 총리의 폐막후 기자회견이 폐지되고,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양회 기간 중 시진핑 주석의 공개 활동이 눈에 띄지 않았으며, 시진핑의 폐막 연설도 없었기 때문에 최근 들어 양회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도는 상대적으로 저하된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창 총리의 정부 업무보고의 일부 내용과 왕이 외교부장에 의한 내외신 기자회견 내용 등은 주요 국제문제들에 대한 중국의 입장을 밝힌 것이기 때문에 이를 통해 중국 대외정책의 변화 여부를 살펴보는 것은 의미가 있을 것이다.
가. 국제정세에 대한 인식
국제정세에 대한 중국의 인식은 2022년 10월의 20차 당대회부터 세계는 100년 이래의 대변국을 맞이하고 있고 이에는 커다란 도전과 위험이 존재한다는 것이었으며, 금번 양회에서도 이런 인식이 반영되어 있다. 리창 총리는 업무보고에서 세계의 변화 국면은 가속적으로 진화하고 있고, 외부 환경은 더욱 복잡하고 엄준하여, 중국의 무역, 과학기술 등 영역에서 더욱 큰 충격을 주게 될 것이라고 하였다. 이어서 그는 세계 경제의 성장동력 부족과 일방주의와 보호주의의 심화, 관세장벽의 대폭적 증가 등은 글로벌 공급망과 국제경제의 흐름에 장애를 초래하고 있다고 하였다. 이는 2024년도 업무보고에서 세계 경제가 성장동력이 부족하고, 지역의 갈등이 빈발하여 외부 환경의 복잡성, 엄준성, 불확실성이 상승하고 있으며, 중국의 국제 순환(대외무역)에 간섭이 있다는 정도로 언급한 것과 비교해 보면 금년에는 보다 구체적으로 중국이 당면한 어려운 외부 환경을 설명하고 있다고 하겠다.
한편 왕이 외교부장은 2024년 기자회견의 모두 발언에서 현재 국제정세는 심각한 변혁 중에 있으며, 인류사회는 다중적인 도전으로 인해 변란으로 얽혀있는 국제환경을 맞이하고 있다고 하였다. 그렇지만 금년에는 여전히 도전들이 충만되어 있다고 하는 수준에서 비교적 간단히 언급하고 있는 것을 보면, 국제정세의 변화에 대해 중국 외교부장이 공개적으로 밝힌 우려나 미국에 대한 경계심은 2023년 이후 점차 그 강도가 약해지고 있는 것으로 관찰된다. 특히 금년에는 트럼프의 대중 경제압박 정책의 발표를 앞두고 미국을 자극하지 않겠다는 의도가 개재된 것으로 보이지만, 한편으로는 중국의 첨단 과학기술 역량과 경제발전에 대한 중국 지도부의 자신감이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트럼프의 일방적이고 미국 우선주의 행동이 미국의 동맹국들에게 거리감을 느끼게 하는 한편, Global South 국가들에게는 시진핑의 인류운명공동체 건설이 설득력을 제공해 줄 수 있어 미국과의 전략적 경쟁에서 중국에게 유리한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는 상황 판단이 작용한 것이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나. 금년도 중국의 경제정책과 국방예산
금년 양회에서도 중국은 경제 성장 목표를 작년과 같이 5% 내외로 설정하고, 민생안정과 내수 경기 활성화에 비중을 두는 한편 지난 수년간과 마찬가지로 국가경쟁력 제고를 위한 첨단 과학기술의 혁신을 강조하면서 R&D 등 관련 예산을 증액 배정하였다. 중국으로서는 글로벌 차원의 미중 경쟁에서 우위를 확보하기 위해 적극적인 내수 부양을 통해 경제를 안정시키고 국가안보도 염두에 둔 과학기술 혁신을 가속화시키겠다는 것이라고 하겠으며, 향후 이를 위한 중앙 정부의 기업에 대한 정책적 지원과 대규모 재정 투자가 예상된다. 다만 트럼프 미 정부가 중국에 대해 이미 발표된 고율 관세와 더불어 대중 첨단 기술 규제를 가일층 강화시킬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중국에게는 막대한 지방 부채, 부동산 시장의 침체 지속, 미흡한 내수 확대 조치 등으로 인해 경기 하방 리스크가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에, 중국 지도부의 목표대로 중국이 금년에 5% 내외의 경제성장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시각도 존재한다.
중국이 세계적 강국으로 계속 발전하는데 있어서 군사 부분 역시 중요하다. 금년도 공식적으로 발표된 중국의 국방예산은 1조 8천 800억 위안(2,460억 달러)으로서 전년 대비 7.2% 증가하였다. 서방에서는 중국의 국방 관련 연구개발비 등이 다른 분야 예산에 편성되어 있기 때문에, 실제 중국의 국방예산은 많게는 50% 정도 추가해서 3천억 달러를 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견해가 다수이다. 어쨌든 발표된 7.2% 증가율도 경제 성장 목표를 상회하는 것으로서, 지난 수년간의 증가율과 같은 수준이며 중국 경제의 어려움 속에서도 중국군 현대화를 이한 국방비가 높은 비율로 계속 증가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고 하겠다. 한편 리창 총리는 업무보고에서 국방 부분 관련, 시진핑 강군사상을 깊이 관철하고 신시대 군사전략 방침을 관철하며, 전력을 다해 건군 100주년 분투 목표 실현을 위한 투쟁을 계속하겠다고 언급하였는데, 이러한 내용은 지난 수년간 양회에서 언급되었던 것들과 대동소이하다고 하겠다.
다. 중국의 대미 관계
중국의 대외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말할 필요도 없이 미국과의 관계이다. 금년도 리창 총리의 정부 업무보고에는 과거에도 그랬지만 미국을 직접 지칭하지 않으면서, 패권주의와 강권 정치에 반대하고, 일방주의, 보호무역주의, 관세장벽과 글로벌 공급망 충격 등을 지적하면서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을 우회적으로 비판하였다. 다만 중국의 대미정책에 관해서는 총리의 업무보고보다는 양회 기간 중 외교부장의 기자회견을 통해서 보다 구체적으로 언급되어 온 것이 관례였으며, 특히 양회가 종료된 후 있었던 총리의 기자회견이 폐지된 이후에는 더욱 그렇다고 하겠다.
미중 관계에 대해서 왕이 부장은 예년과 같이 ‘상호존중, 평화공존, 협력 win-win’이라는 시진핑 주석의 3대 원칙에 따라 중미 관계의 안정적이고, 건강하며, 지속 가능한 발전을 추구할 것이라고 하였다. 물론 왕이 부장도 미중 경제무역 관계는 상호적이고 대등하다고 하면서, 만약 (미국이) 압박만을 가한다면 중국은 이에 결연히 대응할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아울러 중국이 주장하고 있는 글로벌 governance 방안과 유엔과 국제법 중심의 국제질서를 강조하면서, 이중표준(double standard)의 선택적 적응을 하여 시장을 독점하거나 부당한 방법으로 이득을 취해서는 안된다고 하는 등 일방주의의 미국에 대해 우회적으로 비판하였다. 특히 과학기술 면에서 미국의 대중 압박에 대해서는 봉쇄가 있는 곳엔 돌파가 있으며, 압박이 있는 곳엔 혁신이 있다고 하면서 높은 담장은 창의력을 가둘 수 없고, 디커플링과 공급망 차단은 결국 자신을 고립시킬 뿐이라고 주장하기도 하였다.
그렇지만 전체적인 맥락에서 보면 양회 시점에서는 중국이 미국과의 대결보다는 협상을 통한 미중 관계의 안정을 희망한다는 뜻을 트럼프 2기의 미국에 대해 다시 한번 밝힌 것이라고 하겠다. 이는 2023년 양회에서 시진핑이 미국을 지칭하면서 직설적으로 비판하였고, 20차 당대회에서 처음 등장했던 미국과 “기꺼이 싸우겠다(敢于斗爭)”는 용어가 2023 양회에서 반복되었으며, 대만 문제와 소다자 안보협력 등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과 관련된 당시 친깡 외교부장의 한층 강경한 발언들과 대비해 보면, 미국에 대한 중국의 발언 수위가 작년에 이어 상당히 낮아진 것에서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발언 수준의 변화는 상황에 따른 것이라고 보는 것이 보다 설득력이 있다. 2024년에는 2023년 말의 샌프란시스코 미중 정상회담에서 미중 관계의 안정적 관리에 합의하였기 때문일 것이고, 2025년 양회에서는 직전 출범한 트럼프 행정부를 자극하지 않겠다는 의도가 작용되었을 것이라는 점도 감안되어야 할 것이다.
라. 대만해협 문제
대만해협 문제는 중국에게 있어 가장 민감한 사안이고 미중 간 갈등의 가장 큰 요인이다. 대만 문제와 관련, 리창 총리는 정부 업무보고에서 신시대 대만 문제의 총체적 해결 방안을 관철하고, 하나의 중국원칙과 9.2 공식을 견지하며, 대만의 독립 분열과 외부 세력의 개입을 반대하고 양안 관계의 평화적 발전을 추진하겠다고 예년 수준에서 언급하였다. 또한 그는 양안 간 교류와 협력을 통해 양안 융합을 심화시키고 양안 동포들의 복지를 증진함으로써 조국 통일의 대업을 확고히 추진하여 민족 부흥의 위업을 함께 이루겠다고 언급하였다고 하였는데, 이는 2024년 양회에서 언급한 내용과 거의 동일하다. 왕이 부장도 대만 독립의 분열 세력은 반드시 자멸할 것이며, 대만 문제로 중국을 견제하려는 시도는 불장난을 하는 행위라고 비난하고 중국은 반드시 통일될 것이라고 강하게 언급하였지만, 이것 역시 작년 양회에서의 언급 수준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하겠다.
다만 금년도 대만 문제 관련 리창 총리의 언급과 왕이 부장의 답변에서 과거에 사용되었던 평화적 통일을 추구한다는 내용이 사라진 것에 대해 중국의 무력 통일 의지가 강화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대만 언론을 포함하여 일부에서 제기되었다. 그렇지만 2023년 양회에서의 총리 정부 업무보고에는 평화적 통일을 추진한다는 표현 대신 조국의 평화통일 프로세스를 추진한다고 하였고, 작년과 금년 양회에서의 리창 총리 언급은 평화통일 프로세스라는 단어를 사용치 않았지만, 내용상으로 실질적인 차이가 있다고 하기는 어렵다. 또한 근년에 가장 비중 있는 정치행사였던 2022년 10월의 제20차 당대회에서 시진핑이 평화통일과 일국양제는 대만 문제를 해결하는 기본 방향이라고 천명한 바 있고, 금번 정부업무보고에서 언급된 대만 문제의 총체적 해결 방안에도 평화적 통일이 포함되어 있으며, 금년 양회 직후 3월 12일 중국 국무원 대만사무판공실 대변인도 이러한 방침을 재확인하였다는 점을 보면, 상기와 같은 세간의 의구심은 현재로서는 너무 과민한 반응이라고 생각된다.
마. Global South에 대한 외교
미중 간의 전략적 경쟁이 심화됨에 따라 아시아, 아프리카, 중남미 지역의 신흥시장 국가와 개도국들로 구성된 글로벌 사우스에 대한 영향력 확대는 중국 외교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부분이 되었다. 중국이 주장하고 있는 국제질서라 할 수 있는 인류운명공동체 건설과 이를 위한 3개의 Global Initiatives (안보, 발전, 문명) 및 일대일로 구상의 주 대상도 이들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이다. 이에 따라 작년 2024년 양회에 이어 2025년 양회에서도 이 부분은 비중 있게 다루어졌다. 금년도 리창 총리의 업무보고에도 중국은 국제사회와 더불어 평등하고 질서 있는 세계 다극화와 더불어 보편적 혜택과 포용적인 경제 글로벌화를 추진한다고 하였다. 그는 이어 발전, 안보와 문명에 대한 3개의 Global Initiatives를 통하여 글로벌 거버넌스 체계의 개혁과 건설에 적극 참여하여, 세계가 평화적으로 발전하는 아름다운 미래를 위해 인류운명공동체를 구축코자 한다고 언급하였다. 이러한 내용은 2023년 양회부터 총리의 정부 업무보고(Global Civilization Initiative는 2024년 양회부터)에 포함되기 시작하였으며, 미국에 대응하는 글로벌 거버넌스에 대한 중국 방안으로서 앞으로도 양회에서 글로벌 사우스를 대상으로 이에 대한 언급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왕이 부장도 2025년 양회에서 시진핑 주석이 제시한 인류 운명공동체 구상이 각국이 서로의 차이와 분열을 뛰어넘어, 인류가 함께 살아가는 이 지구를 지키기 위한 것이라고 언급한 후에, 글로벌 사우스의 힘찬 부상은 오늘날 시대의 가장 뚜렷한 특징 중 하나라고 하면서, 현재 (중국을 포함한) 글로벌 사우스는 이미 국제 평화를 수호하고, 세계 발전을 견인하며, 글로벌 거버넌스를 개선하는 핵심적 세력으로 부상했다고 하였다. 또한 그는 글로벌 사우스가 자립자강(自立自强)하여 발전 동력을 더욱 강력하게 만들고, 단결하여 글로벌 거버넌스에서의 대표성과 발언권을 지속적으로 높여야 하며, 지속적 경제발전을 통하여 성장동력을 키워야 한다고 하면서, 중국은 항상 글로벌 사우스를 마음에 두고, 뿌리를 글로벌 사우스에 두며, 개도국들과 함께 인류 발전의 새로운 시대를 함께 써나갈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바. 중러 관계
중국과 러시아는 전략적 동반자이며, 2022년 2월 베이징에서의 시진핑-푸틴 회담에서는 양국 간 협력에는 한계가 없다고 선언할 정도로 양국은 긴밀한 협력을 유지해 왔다. 2024년 양회에서 왕이는 중러 양국은 서로 동맹을 맺지 않고 대항하지 않으며 제3국에 대응하지 않는다는 기초 위에서, 영구적인 선린 우호관계를 유지하고, 전면적인 전략적 협력을 심화시킬 것이라고 하였으며, 금년 양회에서의 왕이 언급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금년에는 트럼프-푸틴 간의 우크라이나 종전 협상으로 미러 관계에 진전이 있기 때문에, 이것이 중러 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가 관심이었다. 그렇지만 이에 대해 왕이 부장은 국제정세가 어떻게 변하든 성숙하고, 탄탄하며, 안정적인 중러 관계는 일시적인 사건에 의해 변하지 않으며, 제3자의 간섭을 받지도 않는다고 하면서, 이러한 관계는 불안정한 세계에서 변하지 않는 상수이며, 지정학적 경쟁 속에서 변동하는 변수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였다.
사. 중일 관계
그간 매년 양회 때마다 외교부장은 중일 관계에 대해 언급해 왔는데, 2024년 양회에서는 이를 누락함에 따라 일본 내에서는 이에 대해 중국이 일본과의 관계에 대한 관심이 줄어든 것이라는 평가가 있었지만, 금년 양회에서는 다시 일본에 대한 언급이 있었다. 왕이 부장은 중일 양국이 정상 간의 공동 인식을 바탕으로, 양국이 정치적 상호신뢰를 강화하고, 핵심이익과 주요 관심사에 있어 상호존중의 원칙을 견지해야 하며, 실무 협력을 확대하고, 특히 경제무역, 첨단 기술, 환경, 의료 분야에서 호혜적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하였다.
왕이 부장은 이어 중일 간의 갈등 사안들과 관련, 일본 측이 역사를 직시하고, 타이완 문제 등에서 민감한 사안을 신중히 다루며, 양국 관계의 개선과 발전을 위한 건설적인 역할을 하기를 바란다고 하였는데, 이러한 왕이 부장의 언급은 센카쿠(조어도) 문제 등 민감한 사안에 대한 갈등이 계속되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그 어느 때보다 유화적이라고 볼 수 있다. 이는 트럼프 2기에서 한미일 협력 등을 활용한 미국의 전략적 압박에 대응하기 위하여 한일 양국을 다독인다는 중국의 전략에 따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는 일본인들에 대한 중국 방문 비자 면제 조치나 일본산 수입금지의 해제 검토 등에서 나타나고 있다.
2. 한중관계에 대한 함의
한반도 문제와 관련, 금년 양회에서는 작년과 달리 왕이 부장이 한반도와 한국 관련 부분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는데, 과거에도 자주 그랬던 점에 비추어보면 크게 이상한 것은 아니다. 이는 현재 중국이 한국의 계엄과 대선 정국을 고려하여 한반도 문제에 대해 언급을 자제하겠다는 의도일 수도 있으며, 북한의 우크라이나 파병이나 트럼프의 재집권으로 인해 한반도에서의 긴장이 전년보다는 상대적으로 완화될 가능성이 커졌다는 판단에서일 수도 있다.
다만 최근 중국이 다시 강조하고 있는 것 중의 하나가 대주변국 외교이며, 이에는 한국도 그 대상에 포함된다고 할 수 있다. 금번 양회에서 왕이는 아시아가 중국의 삶의 터전이며, 중국과 아시아 각국이 함께 살아가는 공동의 집이라고 하면서, 오늘날의 중국은 아시아에서 안정의 중심, 경제 성장의 엔진, 지역 안보의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이어 이웃 간에는 크고 작은 충돌과 갈등이 있을 수 있지만, 평등한 협의, 상호 이해와 양보를 통해 갈등을 해결해 나간다면, 반드시 상생의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고 언급하였다. 물론 중국이 실제로 그렇게 행동하는지는 별개일 것이다.
어쨌든 같은 맥락에서 중국은 시진핑의 동남아 순방 직전인 지난 4월 8-9일 이틀간 베이징에서 중앙정치국 상무위원 전원 참석 하에 ‘중앙 주변 공작 회의’를 개최하였다. 이 회의에서 시진핑은 중국과 주변국과의 관계는 세계적인 시각에서 보아야 한다고 하면서, 현재 중국의 주변국 관계는 근래에 최상의 상태에 있으며, 지역의 상황이 세계의 변화에 깊이 연동되는 중요한 단계로 접어들었다고 평가한 바 있다. 주변국들을 끌어들이겠다는 시진핑의 이러한 생각은 주 대상이 아시아 중에서도 동남아시아와 중앙아시아 국가들이라고 하겠지만, 작년 이후 중국이 한국과 일본에 대해서도 비교적 유화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는 상황을 설명해 준다고 하겠다.
한중 관계는 작년 5월 서울에서의 한중 정상급 회담과 11월 페루 리마에서의 윤석열-시진핑 회담 이래 정치, 경제, 인적 교류 등 모든 분야에서 적지 않은 개선의 움직임을 보였다. 비록 작년 12월 3일 계엄령 선포 이후 한국의 국내 정국이 크게 요동치고 있고, 이에 따라 양국 정부간 고위 레벨에서의 소통에 장애가 초래되기도 하였지만, 그로 인해 양국 관계가 다시 후퇴되는 모습은 보이지 않고 있다. 현재 북한의 도발 등으로 한반도 정세가 불안정한 가운데 코로나 이후 국내 경제가 계속 침체되어 왔으며, 트럼프의 상호관세 부과와 대폭적인 방위비 부담 등 미국으로부터의 정치 경제적 압력도 상당하기 때문에, 한국으로서는 6월초 대선 결과와 관계없이 중국과의 관계를 최소한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스러운 상황이다. 이런 점에서, 한국에서 새로운 대통령이 선출되는 6월 이후에는 신임 대통령 취임식에의 특사 파견, 11월의 경주 APEC 개최와 내년 가을 중국에서의 APEC 개최라는 좋은 계기를 잘 활용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미중 간의 전략적 경쟁은 한중 관계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미국은 한미일 공조를 이유로 대만해협 문제나 남중국해 문제 등에서 한국의 적극적인 협력을 요구해 오고 있으며, 한국의 대응 여하에 따라 중국의 강한 반발을 불러 일으킬 가능성이 있다. 또한 미국 내에서는 대만 해협문제와 관련 주한 미군의 전술적 유연성과 더불어 일부 주한 미군의 지역 내 재배치마저도 논의되고 있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한국으로서는 대응에 고심을 하게 될 것으로 생각된다. 우리로서는 여러 가지 정황상 미국과의 안보협력을 강화시킬 필요가 있겠지만, 동시에 한미동맹이나 한미일 공조의 성격이 노골적으로 중국을 대상으로 하는 것으로 보이지 않도록 한국으로서는 유의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한편 중국은 최근 한국에 대해 다양한 레벨에서 한국과의 전략적 소통을 강화시키고 싶다는 의사를 표명해 오고 있다. 물론 중국으로서는 한중 전략적 소통을 통해 한미동맹에 틈을 만들고 한미일 협력을 견제코자 하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보아야겠지만, 한국으로서는 북한의 도발을 억제하고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유지하는 것에 우선순위를 두면서 중국 측과의 안보 대화에 적극적으로 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중국에 대한 미국의 145% 관세부과와 중국의 비슷한 맞대응이라는 소위 관세전쟁은 글로벌 무역 및 한중 경제 관계에 큰 부담을 줄 수 있기 때문에 그 추이를 예의 주시할 필요가 있다. 또한 미국은 반도체 등 첨단제품 수출 규제를 포함한 대중 무역 규제정책에 한국의 동참을 강하게 요구해 오고 있고, 트럼프 2기에서 그 범위와 강도가 더욱 확대되고 강화될 가능성이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중 양국은 신흥 산업 분야 등 틈새를 파고 들어 보완적 상호 협력을 확대시킬 수 있는 방안을 적극 강구할 필요가 있다. 근년에 경제 안보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각국이 관련 산업 보호 조치들을 취하는 추세에 있지만, 한국 경제에 있어서 자유무역은 대단히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에 한중간에 정치 안보 상황이 가급적 무역과 투자에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 바람직스러우며, 관세 등 통상 문제와 관련 미국과의 양자 협상을 진행하면서도 한중일 협력의 틀 내에서도 자유무역의 중요성을 공동으로 강조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양국 국민들 간의 우호적 감정을 증진시키는 노력은 매우 필요한 일이고 경주 APEC을 계기로 정상 차원의 대화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지면 양국 국민들 간의 부정적 감정 완화에 어느 정도 도움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지만 상호간 감정을 해칠 수 있는 사안들이 발생치 않도록 하는 양국 정부의 노력도 이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한국에서는 특히 작년 12월 계엄 사태 이후 일부 정치인들이 사실과 다른 내용으로 혐중 정서를 부추키는 일들이 있었으며, 발생했던 대형 사고에 마치 중국인들이 개재되어 있는 것처럼 가짜 뉴스들이 유포된 바도 있다. 반면에 중국은 해양 관할권에 대한 주장을 염두에 두고 어업관리를 위한 것이라고 하면서 서해 공동수역에서 인공 구조물을 설치하고 있다. 또한 양국간 해양 경계 획정이 지지부진한 가운데 중국 군사력의 확장에 따라 해공군의 군사훈련 범위가 확대되고 있어 서해에서의 우발적 충돌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러한 사안들은 순식간에 국민감정을 악화시킬 수 있기 때문에 이로 인해 한중간 갈등이 발생하지 않도록 양측이 충분한 소통을 통해 원만하게 풀어나갈 필요가 있다.
< 2025. Vol. 19
2025 양회에서 관찰된 중국의 대외정책과 한중관계
동서대학교 신정승
1. 양회에서 관찰된 중국의 대외정책
2025년 양회(전국인민대표대회와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가 지난 3월 4일부터 11일까지 베이징에서 개최되었다. 금번 양회도 국무원 총리에 의한 전년도 업무실적과 금년도 경제성장 목표 등 경제 운용을 포함한 정부 업무에 대한 보고가 있었으며, 예산안에 대한 승인도 이루어졌다. 정부 업무보고에서는 전체적으로 안정과 지속성을 중시하면서 국내 소비 진작을 위한 조치들과 더불어 국가안보를 염두에 둔 과학기술 혁신 등이 강조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이에는 중국이 당면한 경제적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시진핑이 제기한 쌍순환 경제정책과 신질생산력을 중심으로 하는 경제 운용 방식에 대한 중국 지도부의 자신감이 그 바탕에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다만 2023년 이후 총리의 폐막후 기자회견이 폐지되고,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양회 기간 중 시진핑 주석의 공개 활동이 눈에 띄지 않았으며, 시진핑의 폐막 연설도 없었기 때문에 최근 들어 양회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도는 상대적으로 저하된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창 총리의 정부 업무보고의 일부 내용과 왕이 외교부장에 의한 내외신 기자회견 내용 등은 주요 국제문제들에 대한 중국의 입장을 밝힌 것이기 때문에 이를 통해 중국 대외정책의 변화 여부를 살펴보는 것은 의미가 있을 것이다.
가. 국제정세에 대한 인식
국제정세에 대한 중국의 인식은 2022년 10월의 20차 당대회부터 세계는 100년 이래의 대변국을 맞이하고 있고 이에는 커다란 도전과 위험이 존재한다는 것이었으며, 금번 양회에서도 이런 인식이 반영되어 있다. 리창 총리는 업무보고에서 세계의 변화 국면은 가속적으로 진화하고 있고, 외부 환경은 더욱 복잡하고 엄준하여, 중국의 무역, 과학기술 등 영역에서 더욱 큰 충격을 주게 될 것이라고 하였다. 이어서 그는 세계 경제의 성장동력 부족과 일방주의와 보호주의의 심화, 관세장벽의 대폭적 증가 등은 글로벌 공급망과 국제경제의 흐름에 장애를 초래하고 있다고 하였다. 이는 2024년도 업무보고에서 세계 경제가 성장동력이 부족하고, 지역의 갈등이 빈발하여 외부 환경의 복잡성, 엄준성, 불확실성이 상승하고 있으며, 중국의 국제 순환(대외무역)에 간섭이 있다는 정도로 언급한 것과 비교해 보면 금년에는 보다 구체적으로 중국이 당면한 어려운 외부 환경을 설명하고 있다고 하겠다.
한편 왕이 외교부장은 2024년 기자회견의 모두 발언에서 현재 국제정세는 심각한 변혁 중에 있으며, 인류사회는 다중적인 도전으로 인해 변란으로 얽혀있는 국제환경을 맞이하고 있다고 하였다. 그렇지만 금년에는 여전히 도전들이 충만되어 있다고 하는 수준에서 비교적 간단히 언급하고 있는 것을 보면, 국제정세의 변화에 대해 중국 외교부장이 공개적으로 밝힌 우려나 미국에 대한 경계심은 2023년 이후 점차 그 강도가 약해지고 있는 것으로 관찰된다. 특히 금년에는 트럼프의 대중 경제압박 정책의 발표를 앞두고 미국을 자극하지 않겠다는 의도가 개재된 것으로 보이지만, 한편으로는 중국의 첨단 과학기술 역량과 경제발전에 대한 중국 지도부의 자신감이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트럼프의 일방적이고 미국 우선주의 행동이 미국의 동맹국들에게 거리감을 느끼게 하는 한편, Global South 국가들에게는 시진핑의 인류운명공동체 건설이 설득력을 제공해 줄 수 있어 미국과의 전략적 경쟁에서 중국에게 유리한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는 상황 판단이 작용한 것이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나. 금년도 중국의 경제정책과 국방예산
금년 양회에서도 중국은 경제 성장 목표를 작년과 같이 5% 내외로 설정하고, 민생안정과 내수 경기 활성화에 비중을 두는 한편 지난 수년간과 마찬가지로 국가경쟁력 제고를 위한 첨단 과학기술의 혁신을 강조하면서 R&D 등 관련 예산을 증액 배정하였다. 중국으로서는 글로벌 차원의 미중 경쟁에서 우위를 확보하기 위해 적극적인 내수 부양을 통해 경제를 안정시키고 국가안보도 염두에 둔 과학기술 혁신을 가속화시키겠다는 것이라고 하겠으며, 향후 이를 위한 중앙 정부의 기업에 대한 정책적 지원과 대규모 재정 투자가 예상된다. 다만 트럼프 미 정부가 중국에 대해 이미 발표된 고율 관세와 더불어 대중 첨단 기술 규제를 가일층 강화시킬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중국에게는 막대한 지방 부채, 부동산 시장의 침체 지속, 미흡한 내수 확대 조치 등으로 인해 경기 하방 리스크가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에, 중국 지도부의 목표대로 중국이 금년에 5% 내외의 경제성장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시각도 존재한다.
중국이 세계적 강국으로 계속 발전하는데 있어서 군사 부분 역시 중요하다. 금년도 공식적으로 발표된 중국의 국방예산은 1조 8천 800억 위안(2,460억 달러)으로서 전년 대비 7.2% 증가하였다. 서방에서는 중국의 국방 관련 연구개발비 등이 다른 분야 예산에 편성되어 있기 때문에, 실제 중국의 국방예산은 많게는 50% 정도 추가해서 3천억 달러를 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견해가 다수이다. 어쨌든 발표된 7.2% 증가율도 경제 성장 목표를 상회하는 것으로서, 지난 수년간의 증가율과 같은 수준이며 중국 경제의 어려움 속에서도 중국군 현대화를 이한 국방비가 높은 비율로 계속 증가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고 하겠다. 한편 리창 총리는 업무보고에서 국방 부분 관련, 시진핑 강군사상을 깊이 관철하고 신시대 군사전략 방침을 관철하며, 전력을 다해 건군 100주년 분투 목표 실현을 위한 투쟁을 계속하겠다고 언급하였는데, 이러한 내용은 지난 수년간 양회에서 언급되었던 것들과 대동소이하다고 하겠다.
다. 중국의 대미 관계
중국의 대외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말할 필요도 없이 미국과의 관계이다. 금년도 리창 총리의 정부 업무보고에는 과거에도 그랬지만 미국을 직접 지칭하지 않으면서, 패권주의와 강권 정치에 반대하고, 일방주의, 보호무역주의, 관세장벽과 글로벌 공급망 충격 등을 지적하면서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을 우회적으로 비판하였다. 다만 중국의 대미정책에 관해서는 총리의 업무보고보다는 양회 기간 중 외교부장의 기자회견을 통해서 보다 구체적으로 언급되어 온 것이 관례였으며, 특히 양회가 종료된 후 있었던 총리의 기자회견이 폐지된 이후에는 더욱 그렇다고 하겠다.
미중 관계에 대해서 왕이 부장은 예년과 같이 ‘상호존중, 평화공존, 협력 win-win’이라는 시진핑 주석의 3대 원칙에 따라 중미 관계의 안정적이고, 건강하며, 지속 가능한 발전을 추구할 것이라고 하였다. 물론 왕이 부장도 미중 경제무역 관계는 상호적이고 대등하다고 하면서, 만약 (미국이) 압박만을 가한다면 중국은 이에 결연히 대응할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아울러 중국이 주장하고 있는 글로벌 governance 방안과 유엔과 국제법 중심의 국제질서를 강조하면서, 이중표준(double standard)의 선택적 적응을 하여 시장을 독점하거나 부당한 방법으로 이득을 취해서는 안된다고 하는 등 일방주의의 미국에 대해 우회적으로 비판하였다. 특히 과학기술 면에서 미국의 대중 압박에 대해서는 봉쇄가 있는 곳엔 돌파가 있으며, 압박이 있는 곳엔 혁신이 있다고 하면서 높은 담장은 창의력을 가둘 수 없고, 디커플링과 공급망 차단은 결국 자신을 고립시킬 뿐이라고 주장하기도 하였다.
그렇지만 전체적인 맥락에서 보면 양회 시점에서는 중국이 미국과의 대결보다는 협상을 통한 미중 관계의 안정을 희망한다는 뜻을 트럼프 2기의 미국에 대해 다시 한번 밝힌 것이라고 하겠다. 이는 2023년 양회에서 시진핑이 미국을 지칭하면서 직설적으로 비판하였고, 20차 당대회에서 처음 등장했던 미국과 “기꺼이 싸우겠다(敢于斗爭)”는 용어가 2023 양회에서 반복되었으며, 대만 문제와 소다자 안보협력 등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과 관련된 당시 친깡 외교부장의 한층 강경한 발언들과 대비해 보면, 미국에 대한 중국의 발언 수위가 작년에 이어 상당히 낮아진 것에서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발언 수준의 변화는 상황에 따른 것이라고 보는 것이 보다 설득력이 있다. 2024년에는 2023년 말의 샌프란시스코 미중 정상회담에서 미중 관계의 안정적 관리에 합의하였기 때문일 것이고, 2025년 양회에서는 직전 출범한 트럼프 행정부를 자극하지 않겠다는 의도가 작용되었을 것이라는 점도 감안되어야 할 것이다.
라. 대만해협 문제
대만해협 문제는 중국에게 있어 가장 민감한 사안이고 미중 간 갈등의 가장 큰 요인이다. 대만 문제와 관련, 리창 총리는 정부 업무보고에서 신시대 대만 문제의 총체적 해결 방안을 관철하고, 하나의 중국원칙과 9.2 공식을 견지하며, 대만의 독립 분열과 외부 세력의 개입을 반대하고 양안 관계의 평화적 발전을 추진하겠다고 예년 수준에서 언급하였다. 또한 그는 양안 간 교류와 협력을 통해 양안 융합을 심화시키고 양안 동포들의 복지를 증진함으로써 조국 통일의 대업을 확고히 추진하여 민족 부흥의 위업을 함께 이루겠다고 언급하였다고 하였는데, 이는 2024년 양회에서 언급한 내용과 거의 동일하다. 왕이 부장도 대만 독립의 분열 세력은 반드시 자멸할 것이며, 대만 문제로 중국을 견제하려는 시도는 불장난을 하는 행위라고 비난하고 중국은 반드시 통일될 것이라고 강하게 언급하였지만, 이것 역시 작년 양회에서의 언급 수준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하겠다.
다만 금년도 대만 문제 관련 리창 총리의 언급과 왕이 부장의 답변에서 과거에 사용되었던 평화적 통일을 추구한다는 내용이 사라진 것에 대해 중국의 무력 통일 의지가 강화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대만 언론을 포함하여 일부에서 제기되었다. 그렇지만 2023년 양회에서의 총리 정부 업무보고에는 평화적 통일을 추진한다는 표현 대신 조국의 평화통일 프로세스를 추진한다고 하였고, 작년과 금년 양회에서의 리창 총리 언급은 평화통일 프로세스라는 단어를 사용치 않았지만, 내용상으로 실질적인 차이가 있다고 하기는 어렵다. 또한 근년에 가장 비중 있는 정치행사였던 2022년 10월의 제20차 당대회에서 시진핑이 평화통일과 일국양제는 대만 문제를 해결하는 기본 방향이라고 천명한 바 있고, 금번 정부업무보고에서 언급된 대만 문제의 총체적 해결 방안에도 평화적 통일이 포함되어 있으며, 금년 양회 직후 3월 12일 중국 국무원 대만사무판공실 대변인도 이러한 방침을 재확인하였다는 점을 보면, 상기와 같은 세간의 의구심은 현재로서는 너무 과민한 반응이라고 생각된다.
마. Global South에 대한 외교
미중 간의 전략적 경쟁이 심화됨에 따라 아시아, 아프리카, 중남미 지역의 신흥시장 국가와 개도국들로 구성된 글로벌 사우스에 대한 영향력 확대는 중국 외교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부분이 되었다. 중국이 주장하고 있는 국제질서라 할 수 있는 인류운명공동체 건설과 이를 위한 3개의 Global Initiatives (안보, 발전, 문명) 및 일대일로 구상의 주 대상도 이들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이다. 이에 따라 작년 2024년 양회에 이어 2025년 양회에서도 이 부분은 비중 있게 다루어졌다. 금년도 리창 총리의 업무보고에도 중국은 국제사회와 더불어 평등하고 질서 있는 세계 다극화와 더불어 보편적 혜택과 포용적인 경제 글로벌화를 추진한다고 하였다. 그는 이어 발전, 안보와 문명에 대한 3개의 Global Initiatives를 통하여 글로벌 거버넌스 체계의 개혁과 건설에 적극 참여하여, 세계가 평화적으로 발전하는 아름다운 미래를 위해 인류운명공동체를 구축코자 한다고 언급하였다. 이러한 내용은 2023년 양회부터 총리의 정부 업무보고(Global Civilization Initiative는 2024년 양회부터)에 포함되기 시작하였으며, 미국에 대응하는 글로벌 거버넌스에 대한 중국 방안으로서 앞으로도 양회에서 글로벌 사우스를 대상으로 이에 대한 언급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왕이 부장도 2025년 양회에서 시진핑 주석이 제시한 인류 운명공동체 구상이 각국이 서로의 차이와 분열을 뛰어넘어, 인류가 함께 살아가는 이 지구를 지키기 위한 것이라고 언급한 후에, 글로벌 사우스의 힘찬 부상은 오늘날 시대의 가장 뚜렷한 특징 중 하나라고 하면서, 현재 (중국을 포함한) 글로벌 사우스는 이미 국제 평화를 수호하고, 세계 발전을 견인하며, 글로벌 거버넌스를 개선하는 핵심적 세력으로 부상했다고 하였다. 또한 그는 글로벌 사우스가 자립자강(自立自强)하여 발전 동력을 더욱 강력하게 만들고, 단결하여 글로벌 거버넌스에서의 대표성과 발언권을 지속적으로 높여야 하며, 지속적 경제발전을 통하여 성장동력을 키워야 한다고 하면서, 중국은 항상 글로벌 사우스를 마음에 두고, 뿌리를 글로벌 사우스에 두며, 개도국들과 함께 인류 발전의 새로운 시대를 함께 써나갈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바. 중러 관계
중국과 러시아는 전략적 동반자이며, 2022년 2월 베이징에서의 시진핑-푸틴 회담에서는 양국 간 협력에는 한계가 없다고 선언할 정도로 양국은 긴밀한 협력을 유지해 왔다. 2024년 양회에서 왕이는 중러 양국은 서로 동맹을 맺지 않고 대항하지 않으며 제3국에 대응하지 않는다는 기초 위에서, 영구적인 선린 우호관계를 유지하고, 전면적인 전략적 협력을 심화시킬 것이라고 하였으며, 금년 양회에서의 왕이 언급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금년에는 트럼프-푸틴 간의 우크라이나 종전 협상으로 미러 관계에 진전이 있기 때문에, 이것이 중러 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가 관심이었다. 그렇지만 이에 대해 왕이 부장은 국제정세가 어떻게 변하든 성숙하고, 탄탄하며, 안정적인 중러 관계는 일시적인 사건에 의해 변하지 않으며, 제3자의 간섭을 받지도 않는다고 하면서, 이러한 관계는 불안정한 세계에서 변하지 않는 상수이며, 지정학적 경쟁 속에서 변동하는 변수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였다.
사. 중일 관계
그간 매년 양회 때마다 외교부장은 중일 관계에 대해 언급해 왔는데, 2024년 양회에서는 이를 누락함에 따라 일본 내에서는 이에 대해 중국이 일본과의 관계에 대한 관심이 줄어든 것이라는 평가가 있었지만, 금년 양회에서는 다시 일본에 대한 언급이 있었다. 왕이 부장은 중일 양국이 정상 간의 공동 인식을 바탕으로, 양국이 정치적 상호신뢰를 강화하고, 핵심이익과 주요 관심사에 있어 상호존중의 원칙을 견지해야 하며, 실무 협력을 확대하고, 특히 경제무역, 첨단 기술, 환경, 의료 분야에서 호혜적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하였다.
왕이 부장은 이어 중일 간의 갈등 사안들과 관련, 일본 측이 역사를 직시하고, 타이완 문제 등에서 민감한 사안을 신중히 다루며, 양국 관계의 개선과 발전을 위한 건설적인 역할을 하기를 바란다고 하였는데, 이러한 왕이 부장의 언급은 센카쿠(조어도) 문제 등 민감한 사안에 대한 갈등이 계속되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그 어느 때보다 유화적이라고 볼 수 있다. 이는 트럼프 2기에서 한미일 협력 등을 활용한 미국의 전략적 압박에 대응하기 위하여 한일 양국을 다독인다는 중국의 전략에 따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는 일본인들에 대한 중국 방문 비자 면제 조치나 일본산 수입금지의 해제 검토 등에서 나타나고 있다.
2. 한중관계에 대한 함의
한반도 문제와 관련, 금년 양회에서는 작년과 달리 왕이 부장이 한반도와 한국 관련 부분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는데, 과거에도 자주 그랬던 점에 비추어보면 크게 이상한 것은 아니다. 이는 현재 중국이 한국의 계엄과 대선 정국을 고려하여 한반도 문제에 대해 언급을 자제하겠다는 의도일 수도 있으며, 북한의 우크라이나 파병이나 트럼프의 재집권으로 인해 한반도에서의 긴장이 전년보다는 상대적으로 완화될 가능성이 커졌다는 판단에서일 수도 있다.
다만 최근 중국이 다시 강조하고 있는 것 중의 하나가 대주변국 외교이며, 이에는 한국도 그 대상에 포함된다고 할 수 있다. 금번 양회에서 왕이는 아시아가 중국의 삶의 터전이며, 중국과 아시아 각국이 함께 살아가는 공동의 집이라고 하면서, 오늘날의 중국은 아시아에서 안정의 중심, 경제 성장의 엔진, 지역 안보의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이어 이웃 간에는 크고 작은 충돌과 갈등이 있을 수 있지만, 평등한 협의, 상호 이해와 양보를 통해 갈등을 해결해 나간다면, 반드시 상생의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고 언급하였다. 물론 중국이 실제로 그렇게 행동하는지는 별개일 것이다.
어쨌든 같은 맥락에서 중국은 시진핑의 동남아 순방 직전인 지난 4월 8-9일 이틀간 베이징에서 중앙정치국 상무위원 전원 참석 하에 ‘중앙 주변 공작 회의’를 개최하였다. 이 회의에서 시진핑은 중국과 주변국과의 관계는 세계적인 시각에서 보아야 한다고 하면서, 현재 중국의 주변국 관계는 근래에 최상의 상태에 있으며, 지역의 상황이 세계의 변화에 깊이 연동되는 중요한 단계로 접어들었다고 평가한 바 있다. 주변국들을 끌어들이겠다는 시진핑의 이러한 생각은 주 대상이 아시아 중에서도 동남아시아와 중앙아시아 국가들이라고 하겠지만, 작년 이후 중국이 한국과 일본에 대해서도 비교적 유화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는 상황을 설명해 준다고 하겠다.
한중 관계는 작년 5월 서울에서의 한중 정상급 회담과 11월 페루 리마에서의 윤석열-시진핑 회담 이래 정치, 경제, 인적 교류 등 모든 분야에서 적지 않은 개선의 움직임을 보였다. 비록 작년 12월 3일 계엄령 선포 이후 한국의 국내 정국이 크게 요동치고 있고, 이에 따라 양국 정부간 고위 레벨에서의 소통에 장애가 초래되기도 하였지만, 그로 인해 양국 관계가 다시 후퇴되는 모습은 보이지 않고 있다. 현재 북한의 도발 등으로 한반도 정세가 불안정한 가운데 코로나 이후 국내 경제가 계속 침체되어 왔으며, 트럼프의 상호관세 부과와 대폭적인 방위비 부담 등 미국으로부터의 정치 경제적 압력도 상당하기 때문에, 한국으로서는 6월초 대선 결과와 관계없이 중국과의 관계를 최소한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스러운 상황이다. 이런 점에서, 한국에서 새로운 대통령이 선출되는 6월 이후에는 신임 대통령 취임식에의 특사 파견, 11월의 경주 APEC 개최와 내년 가을 중국에서의 APEC 개최라는 좋은 계기를 잘 활용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미중 간의 전략적 경쟁은 한중 관계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미국은 한미일 공조를 이유로 대만해협 문제나 남중국해 문제 등에서 한국의 적극적인 협력을 요구해 오고 있으며, 한국의 대응 여하에 따라 중국의 강한 반발을 불러 일으킬 가능성이 있다. 또한 미국 내에서는 대만 해협문제와 관련 주한 미군의 전술적 유연성과 더불어 일부 주한 미군의 지역 내 재배치마저도 논의되고 있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한국으로서는 대응에 고심을 하게 될 것으로 생각된다. 우리로서는 여러 가지 정황상 미국과의 안보협력을 강화시킬 필요가 있겠지만, 동시에 한미동맹이나 한미일 공조의 성격이 노골적으로 중국을 대상으로 하는 것으로 보이지 않도록 한국으로서는 유의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한편 중국은 최근 한국에 대해 다양한 레벨에서 한국과의 전략적 소통을 강화시키고 싶다는 의사를 표명해 오고 있다. 물론 중국으로서는 한중 전략적 소통을 통해 한미동맹에 틈을 만들고 한미일 협력을 견제코자 하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보아야겠지만, 한국으로서는 북한의 도발을 억제하고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유지하는 것에 우선순위를 두면서 중국 측과의 안보 대화에 적극적으로 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중국에 대한 미국의 145% 관세부과와 중국의 비슷한 맞대응이라는 소위 관세전쟁은 글로벌 무역 및 한중 경제 관계에 큰 부담을 줄 수 있기 때문에 그 추이를 예의 주시할 필요가 있다. 또한 미국은 반도체 등 첨단제품 수출 규제를 포함한 대중 무역 규제정책에 한국의 동참을 강하게 요구해 오고 있고, 트럼프 2기에서 그 범위와 강도가 더욱 확대되고 강화될 가능성이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중 양국은 신흥 산업 분야 등 틈새를 파고 들어 보완적 상호 협력을 확대시킬 수 있는 방안을 적극 강구할 필요가 있다. 근년에 경제 안보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각국이 관련 산업 보호 조치들을 취하는 추세에 있지만, 한국 경제에 있어서 자유무역은 대단히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에 한중간에 정치 안보 상황이 가급적 무역과 투자에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 바람직스러우며, 관세 등 통상 문제와 관련 미국과의 양자 협상을 진행하면서도 한중일 협력의 틀 내에서도 자유무역의 중요성을 공동으로 강조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양국 국민들 간의 우호적 감정을 증진시키는 노력은 매우 필요한 일이고 경주 APEC을 계기로 정상 차원의 대화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지면 양국 국민들 간의 부정적 감정 완화에 어느 정도 도움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지만 상호간 감정을 해칠 수 있는 사안들이 발생치 않도록 하는 양국 정부의 노력도 이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한국에서는 특히 작년 12월 계엄 사태 이후 일부 정치인들이 사실과 다른 내용으로 혐중 정서를 부추키는 일들이 있었으며, 발생했던 대형 사고에 마치 중국인들이 개재되어 있는 것처럼 가짜 뉴스들이 유포된 바도 있다. 반면에 중국은 해양 관할권에 대한 주장을 염두에 두고 어업관리를 위한 것이라고 하면서 서해 공동수역에서 인공 구조물을 설치하고 있다. 또한 양국간 해양 경계 획정이 지지부진한 가운데 중국 군사력의 확장에 따라 해공군의 군사훈련 범위가 확대되고 있어 서해에서의 우발적 충돌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러한 사안들은 순식간에 국민감정을 악화시킬 수 있기 때문에 이로 인해 한중간 갈등이 발생하지 않도록 양측이 충분한 소통을 통해 원만하게 풀어나갈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