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제재 속에 피어난 한 송이 기술 민들레
- 「딥시크 딥쇼크」(이벌찬 지음)를 읽고 -


울산연구원 경제동향분석센터 전문위원 김은영 


  올해 1월, 중국의 저비용 인공지능(AI) 딥시크(DeepSeek)의 등장은 AI 업계에 일대 파장을 일으켰다. 딥시크는 출시 일주일 만에 미국 애플 앱스토어 무료 앱 다운로드 1위를 차지했고, AI 관련 주요 빅테크 기업들의 주가는 요동쳤다. 챗GPT 등 생성형 AI 출시 이후 증시에서 최대 빅테크 기업으로 성장한 엔비디아(NVIDIA)는 무려 17% 폭락해 5,890억 달러가 증발했으며, 인공지능 산업 수혜주인 브로드컴(Broadcom) 역시 17% 넘게 하락해 시총 1조 달러 아래로 내려갔다. 이는 딥시크가 기존 미국 주도 시장에서 '저비용 고성능'이라는 혁신의 충격파를 던졌기 때문이다. 

  딥시크의 추론 AI 모델 R1은 일부 성능 테스트에서 오픈AI의 최신 모델 ‘o1’을 앞서는 결과를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발비용은 챗GPT의 14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일반적으로 하나의 AI 모델을 개발하는 데 1억~10억 달러가 소요되지만, R1의 기반이 되는 훈련 모델 V3에 투입된 비용은 단 557만 6천 달러에 지나지 않는다. 더욱 주목할 점은 이 모델이 대기업이 아닌, 창업 2년도 채 되지 않은 스타트업에서, 그것도 1985년생의 젊은 창업자에 의해 개발되었다는 사실이다. 저비용, 고효율, 챗GPT와 견줄만한 기술력, 스타트업의 도전, 청년 창업자의 성공, 그리고 기술 혁신, 이 모든 요소는 우리가 주목하고 벤치마킹할 만하다. 이처럼 놀라운 성과를 이끈 딥시크의 창업자 량원펑(梁文鋒)은 누구이며, 어떻게 회사를 설립하고 기술을 개발했는지, 정부의 역할은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향후 AI 패권 경쟁에서 과연 누가 우위를 점할 것인지 모든 것이 궁금해진다.


  이러한 궁금증과 내용을 모두 담아낸 책이 바로 이벌찬 저자의 『딥시크 딥쇼크』다. 저자 이벌찬은 조선일보 베이징 특파원으로, 중국 현지를 누비며 다양한 소식을 전해온 인물이다. 딥시크가 세계를 뒤흔들자 그는 설 연휴도 반납한 채 급히 중국으로 돌아갔고, 량원펑의 고향인 광둥성 우촨(廣東省 吳川)의 작은 시골 마을까지 직접 찾아가 취재를 이어갔다. 그리고 마침내 3월 10일, 초판을 출간했다. 딥시크의 등장에서부터 책이 나오기까지 불과 두 달 남짓, 그 짧은 시간 안에 완성해 낸 이 책은 저자의 열정과 집념을 여실히 보여준다.

  저자는 프롤로그를 중국 최초의 시인 굴원(屈原)의 시구로 시작한다.


“갈 길이 멀고 험해도 나는 멈추지 않고 탐색할 것이다

(路漫漫其修遠兮 吾將上下而求索).”


  딥시크의 중문명 ‘심도구색(深度求索)’은 말 그대로 ‘깊이 있는 탐색’을 의미한다. 저자는 정보를 찾고 해답을 제시하는 AI에 이토록 낭만적인 이름이 붙여졌다는 점에서, 자연스레 굴원의 시구를 떠올린다. 이는 단순한 우연이 아닐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구색(求索)’이라는 단어를 접한 중국인이라면 누구나 굴원의 시 「이소(離騷)」를 떠올릴 것이며, 량원펑이 굴원과 자신을 동일시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 둘을 ‘시대를 초월한 개척자’로 연결 짓는다. 기원전 4세기, 집단 창작의 틀을 깨고 개인의 목소리를 드러낸 최초의 시인 굴원, 그리고 21세기 AI 모델의 개발 방식을 전복한 스타트업 창업자 량원펑. 그 유사한 궤적을 통해, 딥시크라는 이름에 담긴 의미와 철학을 굴원의 시구에서 읽어낸 점은 매우 인상 깊다.


  이제 본격적으로 책의 내용으로 들어가 보자.


“량원펑과 천재군단의 AI 전술, 미중 테크전쟁의 서막을 열다” 


  이것이 『딥시크 딥쇼크』의 부제다. 이 한 문장만으로도 책의 방향성과 구성 흐름을 가늠할 수 있다. 책은 크게 세 개의 파트로 나뉜다. Part 1은 ‘량원펑과 천재군단’, Part 2는 ‘중국의 큰 그림’, Part 3는 ‘AI 패권전쟁’으로, 각각 딥시크의 탄생 배경, 중국 정부의 전략, 향후 미중 기술패권의 향방을 짚는다.

  저자는 량원펑이라는 인물을 이해하기 위해 그의 고향까지 찾아가 사촌형과 직접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가 태어난 곳은 생각보다 훨씬 외진 시골이었다. 광둥성 잔장시 우촨시 탄바진의 미리링촌(廣東省 湛江市 吳川市 潭壩鎮 米里嶺村)은 바이두 검색조차 되지 않는 작은 농촌 마을로, 70가구 1,000명의 주민이 모여 사는 량(梁)씨 집성촌이다. 이곳의 1인당 월소득은 고작 1,000위안 수준인데, 그런 환경에서 이른바 ‘개천에서 난 용’이 나온 셈이다.

  량원펑의 성공 이후, 이 마을에는 수많은 관광객이 몰려들었다. 사람들은 “결국 공부가 삶을 바꾼다”, “공부만 하던 애가 잔장시 최고 부자가 됐다”고 입을 모았다. 실제로 그는 대학 입시 수석으로 저장대학교에 합격한 수학 천재로 알려져 있다. 책은 그의 뛰어난 재능이 똑똑한 할아버지의 DNA에서 비롯됐다고 설명한다. 량원펑의 할아버지 량타이시(梁泰熙)는 1930년대 광둥성 최고 명문인 중산대를 졸업한 인물로, 문학·수학·과학에 모두 능했던 인재였다. 그는 농사법 개량 등 여러 공적을 세웠지만, 평생 시골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 이유는 국민당 동북군구 부사령관 량화성(梁華盛)의 비서로 일했다는 이력 때문이었다. 1948년 랴오선(遼瀋) 전투에서 공산당이 승리한 뒤 량화성은 대만으로 도피했고, 량타이시는 ‘줄을 잘못 선’ 비운의 인물이 되고 말았다.

  이러한 배경 때문에, 중국 공안은 량원펑의 출신과 가족사가 지나치게 알려지는 것을 꺼려한다고 저자는 전한다. ‘국가의 영웅’이 사실은 ‘역적의 후손’이라는 사실을 중국 지도부가 바라지 않았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실제로 그의 고향에는 ‘량원펑 출신 함구령’이 내려졌다고 한다. 이는 기존 언론 보도에서는 확인할 수 없었던 사실로, 저자의 집요한 현장 취재가 빛을 발한 대목이기도 하다.


  량원펑은 학부에서는 반도체를, 석사과정에서는 알고리즘을 전공했고, 2023년 7월 저장성 항저우시에 딥시크를 창업했다. 그에 앞서 2015년에는 헤지펀드 ‘하이플라이어(High-Flyer)’를 설립해 현재 약 80억 달러의 자산을 운용하고 있다. 하이플라이어는 2022년까지 엔비디아의 A100 그래픽 프로세서를 1만 개 확보했으며, 이는 딥시크의 AI 연구 기반으로 활용되었다. 

  량원펑은 다른 경영진이 인력과 자금을 관리하는 동안에도 매일 직접 코딩을 하는 진정한 엔지니어로 알려져 있다. 인재 채용에 있어서도 그는 호기심과 열정을 지닌 젊은 연구자들을 중심으로 팀을 구성한다. 이처럼 젊은 천재들이 모여 대규모 투자 없이도 혁신을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딥시크는 기존의 통념을 깼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량원펑은 “혁신은 결국 사람이 이루는 것이며, 사람의 수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라는 철학을 지닌 인물이다. 책은 그의 이러한 인재관을 보여주는 지인의 인터뷰 일화를 소개하며, 량원펑의 리더십 스타일과 딥시크의 문화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뒷받침하고 있다.


“딥시크의 인재 모집 철학은 상위 1%의 천재를 모집해 

99%의 기업이 할 수 없는 일을 한다. 

량원펑 스스로가 천재일 뿐 아니라 천재를 키우는 백락(伯樂)이기도 하다.”


  량원펑은 중국 최고 명문대인 칭화대학교와 베이징대학교 학생들을 인턴으로 채용해 장학금을 지급하며 장기적으로 인재를 육성하고 있다. 또한 해당 대학들에 거액을 기부함으로써, 특히 칭화대 학생들을 우선적으로 선발할 수 있는 암묵적 권리를 확보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는 인재 채용에 있어 경력보다는 기본적인 역량, 창의성, 열정을 더 중요하게 본다. 업무 운영 방식에서도 ‘최소한의 관리’와 ‘자연스러운 분업’이라는 두 가지 원칙을 고수한다. 혁신은 간섭이 적고 자율성이 보장된 환경에서 탄생한다는 것이 그의 철학이다. 실제로 딥시크 연구원들은 AI 반도체를 자유롭게 활용해 실험하고, 스스로 주제를 정해 개별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업무 분장은 초기부터 명확히 정하지 않으며, 연구원 각자가 흥미를 느끼는 분야에서 자율적으로 협력한다. 아이디어가 일정 수준에 도달하면 그제야 량원펑과 시니어 연구원들이 참여해 완성도를 끌어올리는 방식이다.딥시크의 핵심 기술 중 하나인 ‘통문장 독해법(MLA)’ 역시 이러한 자유로운 연구 환경 속에서, 한 젊은 연구원의 아이디어에서 비롯된 것이다. 


  딥시크의 성공은 업계에 큰 충격을 안겨주었고, 경쟁자인 실리콘밸리의 빅테크조차 이를 폄하하지 못했다. 오히려 주요 기업 CEO들은 딥시크의 기술력과 혁신을 공개적으로 인정하며 긍정적인 평가를 내놓았다.


“효율성을 개선해주는 혁신은 반가운 일이다.”    -팀 쿡, 애플 CEO

“(딥시크의) 오픈소스 방식이 글로벌 스탠더드로 자리 잡고 있다.”    -마크 저커버그, 메타 CEO

“딥시크 팀은 매우 울륭하고 좋은 성과를 냈다.”    -순다르 피차이, 알파벳(구글) CEO

“좀 더 간소한 언어 모델이 필수적이라는 점을 보여줬다.”    - 아르빈드 크리슈나, IBM CEO 


  이처럼 딥시크는 실리콘밸리 중심의 기술 패권 질서에 균열을 일으키며, 세계 AI 업계의 새로운 변수로 부상했다. 이러한 성공의 배경에는 중국의 기술 정책과 인재 양성 전략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저자는 중국 정부가 산학연(産學硏)을 유기적으로 지휘하여 첨단기술의 튼튼한 기반을 조성한 뒤, 그 위에 ‘몸집 가벼운 천재들’을 풀어놓는 방식으로 혁신을 유도했다고 분석한다. 외부에서는 종종 조직적 기술 탈취나 파격적인 정부 보조금 정책이 중국 기술 발전의 비결로 언급되지만, 저자는 그 이면에 있는 ‘인재 육성’과 ‘산업 기반’이야말로 핵심이라고 강조한다.

  책에서는 '중국의 첨단기술 확보를 위한 산학연 총동원 전략'을 세 단계로 설명한다. 첫째, 연구 단계에서는 국가 주도로 국영 및 민간 연구소들이 첨단기술 개발에 착수해 단기간에 성과를 내도록 한다. 둘째, 인큐베이팅 단계에서는 특정 산업 분야의 선도 기업, 이른바 ‘챔피언 기업’을 지정하고, 이들이 기술을 빠르게 상용화할 수 있도록 집중 지원한다. 셋째, 테스트 단계에서는 아직 완성되지 않은 시제품이나 원가가 높은 기술 제품을 시장에 내놓고, 소비자 피드백을 통해 빠르게 개선해 나가는 구조다. 미국이 민간 주도의 기술 생태계를 통해 점진적으로 혁신을 이끌었다면, 중국은 정부 주도로 각 역할을 정확히 배분해 ‘혁신 공장’을 운영하는 방식이라고 저자는 분석한다.

  인재 양성 전략도 이와 유사한 흐름을 따른다. 중국은 국가 주도로 세계에서 가장 많은 AI 인재를 배출하고 있다. 2018년 교육부가 발표한 ‘대학 AI 창신 행동계획(高等學校人工智慧創新行動計劃)’ 이후, 불과 6년 만에 전국 대학에 535개의 AI 관련 학과가 신설되었고, 매년 4만 3,000명 이상의 학생이 입학하고 있다. 2020년부터는 ‘강기(強基) 전형’이라는 이공계 특화 선발제도를 도입해 AI 인재를 체계적으로 선별하고 있으며, 2023년에는 AI 학과를 포함한 이공계 정원을 20% 이상 확대하는 방침까지 내놓았다. 여기에 중국의 빅테크 기업들(알리바바, 화웨이, 바이두, 텐센트 등)이 주요 대학들과 공동연구실을 운영하며 전폭적인 후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저자는 이러한 시스템이 단지 제도적 뒷받침에 그치지 않고, 실제로 스타트업 창업이나 첨단 분야 취업이 ‘천재들 사이에선 당연한 경로’로 여겨질 만큼 현실화되었다고 본다. 석학이 가르치고, 기업이 투자하며, 국가가 길을 여는 이 구조는 실리콘밸리의 괴짜들조차 긴장하게 만들 정도라는 것이다.

  결국 저자는 딥시크의 성공을, 중국 역사에서 반복되어온 ‘천재와 국가의 콜라보’ 전략의 현대적 재현으로 해석한다. 첨단 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전 국민이 동원된 무대 위에서, 한 천재가 이룬 성과라는 것이다. 화웨이(5G), 틱톡(소셜미디어), DJI(드론) 등도 모두 ‘거국 동원 체제’(산학연과 국민을 총동원해 목표를 달성하는 방식)속에서 탄생했다. 마찬가지로, 중국은 최대 격전지인 AI 분야에서도 이 전략을 통해 선도 기업을 만들어 낸 셈이다.

  실제로 딥시크는 상대적으로 적은 수의 엔비디아 칩만으로도 강력한 AI 모델을 구현해냈고, 이에 세계 주요 외신들은 “글로벌 기술계가 충격에 빠졌다”고 보도했다. 딥시크의 등장은 엔비디아를 비롯한 미국 AI 기업들에게 중대한 도전 과제가 되었으며, AI 기술의 중심축이 미국에서 중국으로 이동할 수 있다는 전망까지 제기되고 있다. 저자는 에필로그에서 “미국과 중국 간 기술 격차는 여전히 존재하지만, 중국은 그 격차를 돌파할 방법을 찾아냈다”고 진단하며, 시간이 지날수록 양국 간 기술력은 대등해지거나 오히려 중국이 우위를 점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전망한다.


  최근 미국의 ‘딥시크(DeepSeek) 때리기’가 본격화되고 있다. 미 하원 미중전략경쟁특별위원회는 엔비디아의 아시아 지역 AI 칩 판매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으며, 엔비디아가 수출 규정을 위반해 딥시크에 기술을 고의로 제공했는지 여부를 평가 중이다. 미국 정부는 앞으로 딥시크에 대한 AI 칩 수출 통제를 한층 더 강화하고, 미국 내 기술 구매와 접근 자체를 차단할 가능성이 높다.

  『딥시크 딥쇼크』를 덮으며 마지막으로 남는 인상은 이렇다. 중국의 딥시크는 미국의 거센 제재 속에서도 기술 개발에 성공한, 마치 콘크리트 틈을 비집고 피어난 한 송이 기술 민들레와 같았다. 이 민들레의 홀씨는 바람을 타고 야생 들판으로 흩날려, 또 다른 민들레들을 피워낼 것이다. 제재가 거셀수록, 이 기술 야생화는 더욱 강인하게 퍼져 나가며, 새로운 생명과 가능성을 일으켜 세울지도 모른다.

***

동서대학교 중국연구센터

우) 47011 부산광역시 사상구 주례로47 동서대학교 국제협력관 8층 TEL : 051)320-2950~2
Copyright © 2018 webzine.dsuchina.kr All Rights Reserved. Design By SP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