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이라는 질문 – 『동아시아청년학』 연구를 시작하며
부경대학교 글로벌차이나 연구소 소장 이보고
1. 근대의 탄생과 청년
청년은 아시아의 근대기에 들어서면서 유년기와 기성세대 사이에서 새롭게 포착되고 발명된 세대 개념이다. 모든 개인은 시대와 지역에 따라 서로 다른 시간과 공간의 경험을 축적하지만, 근대 이후의 시공간 질서에서는 무의식적으로 공유되는 일정한 감각이 형성되었다. 이러한 시공간에 대한 ‘일관성(consistence)’ 있는 감각은 근대 이후 전개된 시간과 공간의 제도화 과정에서 비롯된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청년은 한 인간의 아동-청년-성인-노년이라는 연대기적 생애 주기 속에서 자리 잡으며, 사회적 생산 및 인구의 재생산을 준비하는 역할을 부여받았다. 즉, 청년의 위상은 연대기적 시간의 제도화에 따라 규범적인 시공 질서에 기반하여 설정되었다. 따라서 청년은 단지 개인의 일생 중 특정 시기만을 의미하는 것뿐만 아니라, 사회 구조의 연속성을 보장하고, 그 내부의 생명성을 담당하는 핵심 동력으로 상정되었다.
엘리아스는 근대적 시간-공간의 규범성을 설명하며, “사회 구조란 필수적일 뿐 아니라 회피할 수 없는 시간적 정의의 망”이며, “성격 구조란 매우 날카롭고 훈육된 시간 감각”이라 정의한다. 그는 특히 시·공간의 규범성과 사회 구조와의 관계를 강조했다. 한편 르페브르는 공간을 역사적·사회적으로 구성된 산물로 보며, 그 핵심은 생산양식과 연계된 ‘공간적 코드’가 공간 실천을 규정한다고 주장한다. 이렇게 되면 신체는 이러한 공간 실천을 통해 형성되는 사회적이고 공간적 신체로 의미화된다.1)
이 같은 근대적 시·공간의 규범과 청년을 연결하면, 청년은 한편으로 사회를 발전시키는 주체이자 동력이지만, 반대로 동시에 사회 구조 속에 포섭되고 소외되며, 또 억압받는 대상이기도 하다. 아시아 각국의 근대화 과정에서 청년은 표면적으로 근대 주체로 빈번히 표상되곤 했지만, 사실 이들이 마주했던 현실은 근대화의 이면에 감춰진 복잡다단한 모순을 더 많이 포괄하고 있었다. 지금 와 생각해 보면, 이 같은 이유로 우리는 청년을 통해 아시아 근대의 출발점을 다시 사유할 수 있는 문제 의식을 갖게 되었다. 과연 청년이라는 세대는 단순히 근대의 가치를 구현하고 대변하는 주체로만 이해되어야 하는가? 본 연구는 청년을 둘러싼 근대적 기획과, 이에 대응하여 나타나는 청년들의 타협이나 저항 같은 각종 실천을 단순히 ‘근대적 소명’에 대한 응답으로 환원하고자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러한 실천을 청년들이 자기 삶을 스스로 구성해 가는 ‘생애 기획의 출발점’으로 새롭게 읽어내고자 한다.
이 같은 보편적 맥락을 넘어, 아시아의 근대라는 특수한 역사적 조건을 고려할 때, 청년은 더욱 필요불가결한 존재였다. 아시아로 유입된 근대적 가치는 각국의 맥락에서 문명화라는 이름의 지향성이자, 동시에 전통과 특수성을 억압하는 제국의 힘으로 작용했다. 이에 따라 청년은 그 특수한 압력에 대응하는 실행자(agent)로 호명되었고, 각국 청년들은 그 호명에 순응하거나 저항하면서 아시아를 표상하였다. 이 같은 청년에 대한 호명과 그에 대한 청년의 응답은 지금도 아시아 각국의 사회적 맥락 속에서 다양하게 분화하고 있다. 두아라의 설명처럼, 청년들의 시간은 단선적으로 과거에서 현재로 전승(transmitted)되는 것이 아니라, 시간과 공간 속에 산포(dispersed)되는 양상을 보인다.2)
2. 모순적 입체로서의 아시아 청년, 그리고 “청년학”
오늘날 “청년”이라는 개념 범주는 그 자체가 문제적이다. 동아시아 각국에서 고령화가 심화됨에 따라 청년을 정의하는 사회적 기준 또한 점차 확장되고 있으며, 그 범주 안에는 셀 수 없을 정도의 다양한 삶의 양태와 조건을 지닌 개별 청년들이 공존하고 있다. 따라서 청년이라는 세대를 하나의 시간적 단위로 일방적으로 묶거나, 동일한 코호트를 기준으로 동질성을 전제로 하여 개념화하려는 시도는 이미 여러 연구에서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다시 말해, 청년 내부에는 다층적인 불평등과 불확실성이 만연해 있으며, 이로 인해 청년을 하나의 고정된 정체성으로 환원할 수 없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특히 근현대 전환기 청년 개념의 규정성과 관련된 다양한 논쟁 속에서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왔다. 예컨대, 중국 근대 혁명을 주도한 인물로 평가받는 천두슈(陳獨秀)는 1915년 「청년들에게 고함[警告青年]」이라는 글에서 다음과 같이 지적한 바 있다.
“나이는 청년인데 몸은 이미 노년에 접어든 사람이 10명 중 2명, 나이와 몸은 청년이지만 생각은 이미 노쇠한 사람이 10명 중 9명이다. 겉으로는 청년의 모습이나, 내면의 포부와 사고는 진부하고 부패한 자들과 다를 바 없다.…어디를 가도 사회적 분위기를 채우고 있는 건 바로 그런 진부한 자들이며, 참신하고 발랄한 청년은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3)
이 글은 근대 초기 아시아에서 청년이 단순한 연령 범주가 아니라, 절망적인 과거에 저항하는 정신적 주체로 설정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또 조금 다른 각도로 표현해 보면, 이 글은 청년이라는 개념이 전통에 대한 비판, 근대화 지향, 국가 혁신, 인간 개조와 같은 대타자의 호명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음을 역설적으로 드러내 주고 있다. 이번에 새롭게 출발하는 『동아시아청년학』 사업단은 이러한 청년을 둘러싼 호명과 그것에 대한 청년들의 반응을 본격적인 연구의 출발점으로 삼는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청년은 연령이나 세대로만 규정할 수 없는 복합적 범주이며, 지금에 와서는 청년들이 이전과 달리 대타자의 호명과 전혀 다른 긴장의 맥락 속에서 실천의 주체로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본 연구는 청년의 근본적 모순성과 다면성, 그리고 그 내적인 역동성을 새롭게 조명하고 이를 낯설게 바라보기 위한 다층적인 참조체계를 구성할 것이다.
오늘날 청년의 상은 희망과 절망, 가능성과 좌절, 주체성과 주변성이 얽힌 복잡한 입체로 나타난다. 그러한 다면적 상(像)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각도에서 청년을 비춰볼 수 있는 거울, 곧 다각적인 분석의 시선이 필요하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동아시아청년학』 사업단은, 청년을 인문학 중심의 다학제적 시선에서 조망하고자 한다. 우리는 청년의 정체성과 관련된 다양한 문화현상과 실천을 탐색하며, 이를 사회적·학문적 문제 해결의 한 경로로 재구성하려 한다. 기존 청년 연구가 대체로 국가 단위 혹은 사회 구조 중심으로 진행되어 온 반면, 본 연구는 동아시아라는 지역적 맥락에서 청년의 경험과 담론을 분석하고, 국가 경계를 초월한 초국적·문화적 연계를 탐색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또한 도시와 지역, 계층, 국적 등 다양한 경계 위에 놓인 청년들의 실천을 주목하며, 다시금 사회 구조적 시각과의 접점을 모색한다. 이러한 접근은 청년 연구의 방법론 자체에 대한 반성을 수반하며, 연구자와 연구 대상 간의 거리를 가능한 한 좁히는 것을 목표로 할 것이다. 무엇보다 우리는 청년을 단순한 연구 대상으로 보지 않는다. 청년 스스로가 연구의 주체로 참여하는 방식, 즉 참여형·실천형 연구모델을 통해, 새로운 연구방법론을 제시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청년의 실천과 선택을 평가하거나 규정하기보다는, 그 자체의 의미와 역동성을 충실히 포착하고자 한다.
[ 챗지피티가 “청년의 탄생”이란 제목으로 그려낸 그림 ]

3. “위기의 청년”에서 “방법으로서 청년”으로
오늘날 동아시아 각지의 청년들은 지역, 집단, 개인의 차원에서 일상화된 위기 속에 놓여 있다. 세대 간·계층 간 불평등의 심화, 사회적 연결망의 약화, 젠더 갈등, 정치적 극단화 같은 현상들은 청년들의 삶을 둘러싼 사회적 그늘이 되어, 상시적이고 만연한 불안과 정동 형성의 핵심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불안정한 고용 환경, 상승하는 주거 비용, 과도한 경쟁과 그로 인한 과로 및 압박은 이미 초국적 유사성을 보이는 문제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는 종종 저출산·고령화와 같은 인구구조의 문제를 청년 탓으로 돌리려는 무책임한 속내를 드러내곤 한다.
『동아시아청년학』 사업단은 이러한 위기 상황 속 청년들을 어떤 규정이나 선입견에 기대지 않고, 있는 그대로 이해하려는 시선을 확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본다. 이를 위해 우리는 “방법으로서 청년”이라는 관점을 채택하고자 한다. 이는 청년을 분석의 고정적 대상이 아니라, 사회와 삶을 해석하고 질문하는 하나의 방법적 틀로 삼고자 하는 접근이다. 청년은 고정되지 않고 유동하며, 그 실천 역시 끊임없이 변화하기 때문에,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 역시 어떤 이념이나 규범적 판단에 얽매이지 않아야 한다. 이러한 ‘방법’적 관점은 곧, 청년들이 현실 속에서 만들고 있는 고유한 실천과 생애 기획을 해석하는 방식 또한 고정될 수 없음을 시사한다. 청년들은 각자의 상황 속에서 저항과 순응, 타협과 도피,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의 긴장 상태를 이어가며 자신만의 궤적을 만들어 간다. 그 실천은 단일한 역사 서사로 환원되지 않으며, 산포된(dispersed)·다선적인(多線的) 역사들(histories)로 구성된다.
본 연구는 동시에, 지역과 세대, 그리고 시장에서 이중·삼중의 주변화를 겪고 있는 청년들의 삶이 작동하게 만드는 사회적 역학에 주목한다. 그리고 그러한 구조 속에서 주체적으로 실천을 펼치는 청년들의 움직임 안에 담긴 인문학적 가치와 함의를 다양한 학문 간 융합의 시선으로 탐색하고자 한다. 그 과정에서, 전통적인 영웅 서사보다는 오히려 비선형적이며 파편화된 반서사(反敍事, anti-narrative)가 지닌 힘과 그 가능성을 체감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이처럼 오늘날 청년들이 포착되는 다양한 단면을 보다 입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연구의 출발점으로 다음과 같은 세 가지 핵심 범주를 설정하였다.
“담론”: 동아시아 청년 관련 역사적 맥락과 이론 정립
“정동”: 청년 내면의 비의식적·비언어적 감각과 에너지 흐름
“매체”: 청년이 주체로 등장하거나 청년을 대상으로 한 다양한 콘텐츠 분석
이러한 범주는 어디까지나 청년들의 복잡한 현실을 학문적으로 접근하기 위한 불가피한 경로일 뿐이다. 실제 청년들의 삶과 실천은 이보다 훨씬 더 풍부하고 복합적이며, 범주들 사이의 경계를 넘나드는 상호 연결성을 지닌다. 따라서 본 연구는 이들 범주의 구분에 머무르지 않고, 그 이면에 존재하는 복잡한 관계성을 더욱 집요하게 추적할 것이다.
궁극적으로 『동아시아청년학』은 단순한 학술 연구를 넘어, 사회적 실천으로 이어지는 연구모델을 구축하는 데 주력할 것이다. 청년 자료 아카이브의 구축, 청년 네트워크 플랫폼의 운영, 지역사회 연계 연구, 청년 관련 정책 제안 등의 활동을 통해, 연구성과가 청년과의 실제 호흡 속에서 존재할 수 있도록 모색할 것이다. 이는 청년을 단지 연구의 대상이 아닌, 일종의 ‘방법’으로 마주하고, 그로부터 의미 있는 청년 변화를 실질적으로 이끌어 보려는 연구의 궁극적 목표와 맞닿아 있다.

부산 지역 대학 청년 취업 홍포 포스터 https://blog.naver.com/sssully/222566245074

『시정일보』 2024년 10월 29일 자 기사 : (지자체의) 2024 청년 맞춤형 취업 특강 및 컨설팅 홍보 포스터
https://www.sijung.co.kr/news/articleView.html?idxno=402844
1) 이진경, 『근대적 시·공간의 탄생』, 푸른숲, 2000, 65쪽
2) 프라센지트 두아라, 『민족으로부터 역사를 구출하기』, 삼인, 2004, 24쪽
3) 陳獨秀, 『청년잡지』 제1권 제1호, 1915년 9월 15일.
< 2025. Vol. 19
‘청년’이라는 질문 – 『동아시아청년학』 연구를 시작하며
부경대학교 글로벌차이나 연구소 소장 이보고
1. 근대의 탄생과 청년
청년은 아시아의 근대기에 들어서면서 유년기와 기성세대 사이에서 새롭게 포착되고 발명된 세대 개념이다. 모든 개인은 시대와 지역에 따라 서로 다른 시간과 공간의 경험을 축적하지만, 근대 이후의 시공간 질서에서는 무의식적으로 공유되는 일정한 감각이 형성되었다. 이러한 시공간에 대한 ‘일관성(consistence)’ 있는 감각은 근대 이후 전개된 시간과 공간의 제도화 과정에서 비롯된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청년은 한 인간의 아동-청년-성인-노년이라는 연대기적 생애 주기 속에서 자리 잡으며, 사회적 생산 및 인구의 재생산을 준비하는 역할을 부여받았다. 즉, 청년의 위상은 연대기적 시간의 제도화에 따라 규범적인 시공 질서에 기반하여 설정되었다. 따라서 청년은 단지 개인의 일생 중 특정 시기만을 의미하는 것뿐만 아니라, 사회 구조의 연속성을 보장하고, 그 내부의 생명성을 담당하는 핵심 동력으로 상정되었다.
엘리아스는 근대적 시간-공간의 규범성을 설명하며, “사회 구조란 필수적일 뿐 아니라 회피할 수 없는 시간적 정의의 망”이며, “성격 구조란 매우 날카롭고 훈육된 시간 감각”이라 정의한다. 그는 특히 시·공간의 규범성과 사회 구조와의 관계를 강조했다. 한편 르페브르는 공간을 역사적·사회적으로 구성된 산물로 보며, 그 핵심은 생산양식과 연계된 ‘공간적 코드’가 공간 실천을 규정한다고 주장한다. 이렇게 되면 신체는 이러한 공간 실천을 통해 형성되는 사회적이고 공간적 신체로 의미화된다.1)
이 같은 근대적 시·공간의 규범과 청년을 연결하면, 청년은 한편으로 사회를 발전시키는 주체이자 동력이지만, 반대로 동시에 사회 구조 속에 포섭되고 소외되며, 또 억압받는 대상이기도 하다. 아시아 각국의 근대화 과정에서 청년은 표면적으로 근대 주체로 빈번히 표상되곤 했지만, 사실 이들이 마주했던 현실은 근대화의 이면에 감춰진 복잡다단한 모순을 더 많이 포괄하고 있었다. 지금 와 생각해 보면, 이 같은 이유로 우리는 청년을 통해 아시아 근대의 출발점을 다시 사유할 수 있는 문제 의식을 갖게 되었다. 과연 청년이라는 세대는 단순히 근대의 가치를 구현하고 대변하는 주체로만 이해되어야 하는가? 본 연구는 청년을 둘러싼 근대적 기획과, 이에 대응하여 나타나는 청년들의 타협이나 저항 같은 각종 실천을 단순히 ‘근대적 소명’에 대한 응답으로 환원하고자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러한 실천을 청년들이 자기 삶을 스스로 구성해 가는 ‘생애 기획의 출발점’으로 새롭게 읽어내고자 한다.
이 같은 보편적 맥락을 넘어, 아시아의 근대라는 특수한 역사적 조건을 고려할 때, 청년은 더욱 필요불가결한 존재였다. 아시아로 유입된 근대적 가치는 각국의 맥락에서 문명화라는 이름의 지향성이자, 동시에 전통과 특수성을 억압하는 제국의 힘으로 작용했다. 이에 따라 청년은 그 특수한 압력에 대응하는 실행자(agent)로 호명되었고, 각국 청년들은 그 호명에 순응하거나 저항하면서 아시아를 표상하였다. 이 같은 청년에 대한 호명과 그에 대한 청년의 응답은 지금도 아시아 각국의 사회적 맥락 속에서 다양하게 분화하고 있다. 두아라의 설명처럼, 청년들의 시간은 단선적으로 과거에서 현재로 전승(transmitted)되는 것이 아니라, 시간과 공간 속에 산포(dispersed)되는 양상을 보인다.2)
2. 모순적 입체로서의 아시아 청년, 그리고 “청년학”
오늘날 “청년”이라는 개념 범주는 그 자체가 문제적이다. 동아시아 각국에서 고령화가 심화됨에 따라 청년을 정의하는 사회적 기준 또한 점차 확장되고 있으며, 그 범주 안에는 셀 수 없을 정도의 다양한 삶의 양태와 조건을 지닌 개별 청년들이 공존하고 있다. 따라서 청년이라는 세대를 하나의 시간적 단위로 일방적으로 묶거나, 동일한 코호트를 기준으로 동질성을 전제로 하여 개념화하려는 시도는 이미 여러 연구에서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다시 말해, 청년 내부에는 다층적인 불평등과 불확실성이 만연해 있으며, 이로 인해 청년을 하나의 고정된 정체성으로 환원할 수 없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특히 근현대 전환기 청년 개념의 규정성과 관련된 다양한 논쟁 속에서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왔다. 예컨대, 중국 근대 혁명을 주도한 인물로 평가받는 천두슈(陳獨秀)는 1915년 「청년들에게 고함[警告青年]」이라는 글에서 다음과 같이 지적한 바 있다.
“나이는 청년인데 몸은 이미 노년에 접어든 사람이 10명 중 2명, 나이와 몸은 청년이지만 생각은 이미 노쇠한 사람이 10명 중 9명이다. 겉으로는 청년의 모습이나, 내면의 포부와 사고는 진부하고 부패한 자들과 다를 바 없다.…어디를 가도 사회적 분위기를 채우고 있는 건 바로 그런 진부한 자들이며, 참신하고 발랄한 청년은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3)
이 글은 근대 초기 아시아에서 청년이 단순한 연령 범주가 아니라, 절망적인 과거에 저항하는 정신적 주체로 설정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또 조금 다른 각도로 표현해 보면, 이 글은 청년이라는 개념이 전통에 대한 비판, 근대화 지향, 국가 혁신, 인간 개조와 같은 대타자의 호명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음을 역설적으로 드러내 주고 있다. 이번에 새롭게 출발하는 『동아시아청년학』 사업단은 이러한 청년을 둘러싼 호명과 그것에 대한 청년들의 반응을 본격적인 연구의 출발점으로 삼는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청년은 연령이나 세대로만 규정할 수 없는 복합적 범주이며, 지금에 와서는 청년들이 이전과 달리 대타자의 호명과 전혀 다른 긴장의 맥락 속에서 실천의 주체로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본 연구는 청년의 근본적 모순성과 다면성, 그리고 그 내적인 역동성을 새롭게 조명하고 이를 낯설게 바라보기 위한 다층적인 참조체계를 구성할 것이다.
오늘날 청년의 상은 희망과 절망, 가능성과 좌절, 주체성과 주변성이 얽힌 복잡한 입체로 나타난다. 그러한 다면적 상(像)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각도에서 청년을 비춰볼 수 있는 거울, 곧 다각적인 분석의 시선이 필요하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동아시아청년학』 사업단은, 청년을 인문학 중심의 다학제적 시선에서 조망하고자 한다. 우리는 청년의 정체성과 관련된 다양한 문화현상과 실천을 탐색하며, 이를 사회적·학문적 문제 해결의 한 경로로 재구성하려 한다. 기존 청년 연구가 대체로 국가 단위 혹은 사회 구조 중심으로 진행되어 온 반면, 본 연구는 동아시아라는 지역적 맥락에서 청년의 경험과 담론을 분석하고, 국가 경계를 초월한 초국적·문화적 연계를 탐색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또한 도시와 지역, 계층, 국적 등 다양한 경계 위에 놓인 청년들의 실천을 주목하며, 다시금 사회 구조적 시각과의 접점을 모색한다. 이러한 접근은 청년 연구의 방법론 자체에 대한 반성을 수반하며, 연구자와 연구 대상 간의 거리를 가능한 한 좁히는 것을 목표로 할 것이다. 무엇보다 우리는 청년을 단순한 연구 대상으로 보지 않는다. 청년 스스로가 연구의 주체로 참여하는 방식, 즉 참여형·실천형 연구모델을 통해, 새로운 연구방법론을 제시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청년의 실천과 선택을 평가하거나 규정하기보다는, 그 자체의 의미와 역동성을 충실히 포착하고자 한다.
[ 챗지피티가 “청년의 탄생”이란 제목으로 그려낸 그림 ]
3. “위기의 청년”에서 “방법으로서 청년”으로
오늘날 동아시아 각지의 청년들은 지역, 집단, 개인의 차원에서 일상화된 위기 속에 놓여 있다. 세대 간·계층 간 불평등의 심화, 사회적 연결망의 약화, 젠더 갈등, 정치적 극단화 같은 현상들은 청년들의 삶을 둘러싼 사회적 그늘이 되어, 상시적이고 만연한 불안과 정동 형성의 핵심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불안정한 고용 환경, 상승하는 주거 비용, 과도한 경쟁과 그로 인한 과로 및 압박은 이미 초국적 유사성을 보이는 문제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는 종종 저출산·고령화와 같은 인구구조의 문제를 청년 탓으로 돌리려는 무책임한 속내를 드러내곤 한다.
『동아시아청년학』 사업단은 이러한 위기 상황 속 청년들을 어떤 규정이나 선입견에 기대지 않고, 있는 그대로 이해하려는 시선을 확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본다. 이를 위해 우리는 “방법으로서 청년”이라는 관점을 채택하고자 한다. 이는 청년을 분석의 고정적 대상이 아니라, 사회와 삶을 해석하고 질문하는 하나의 방법적 틀로 삼고자 하는 접근이다. 청년은 고정되지 않고 유동하며, 그 실천 역시 끊임없이 변화하기 때문에,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 역시 어떤 이념이나 규범적 판단에 얽매이지 않아야 한다. 이러한 ‘방법’적 관점은 곧, 청년들이 현실 속에서 만들고 있는 고유한 실천과 생애 기획을 해석하는 방식 또한 고정될 수 없음을 시사한다. 청년들은 각자의 상황 속에서 저항과 순응, 타협과 도피,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의 긴장 상태를 이어가며 자신만의 궤적을 만들어 간다. 그 실천은 단일한 역사 서사로 환원되지 않으며, 산포된(dispersed)·다선적인(多線的) 역사들(histories)로 구성된다.
본 연구는 동시에, 지역과 세대, 그리고 시장에서 이중·삼중의 주변화를 겪고 있는 청년들의 삶이 작동하게 만드는 사회적 역학에 주목한다. 그리고 그러한 구조 속에서 주체적으로 실천을 펼치는 청년들의 움직임 안에 담긴 인문학적 가치와 함의를 다양한 학문 간 융합의 시선으로 탐색하고자 한다. 그 과정에서, 전통적인 영웅 서사보다는 오히려 비선형적이며 파편화된 반서사(反敍事, anti-narrative)가 지닌 힘과 그 가능성을 체감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이처럼 오늘날 청년들이 포착되는 다양한 단면을 보다 입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연구의 출발점으로 다음과 같은 세 가지 핵심 범주를 설정하였다.
“담론”: 동아시아 청년 관련 역사적 맥락과 이론 정립
“정동”: 청년 내면의 비의식적·비언어적 감각과 에너지 흐름
“매체”: 청년이 주체로 등장하거나 청년을 대상으로 한 다양한 콘텐츠 분석
이러한 범주는 어디까지나 청년들의 복잡한 현실을 학문적으로 접근하기 위한 불가피한 경로일 뿐이다. 실제 청년들의 삶과 실천은 이보다 훨씬 더 풍부하고 복합적이며, 범주들 사이의 경계를 넘나드는 상호 연결성을 지닌다. 따라서 본 연구는 이들 범주의 구분에 머무르지 않고, 그 이면에 존재하는 복잡한 관계성을 더욱 집요하게 추적할 것이다.
궁극적으로 『동아시아청년학』은 단순한 학술 연구를 넘어, 사회적 실천으로 이어지는 연구모델을 구축하는 데 주력할 것이다. 청년 자료 아카이브의 구축, 청년 네트워크 플랫폼의 운영, 지역사회 연계 연구, 청년 관련 정책 제안 등의 활동을 통해, 연구성과가 청년과의 실제 호흡 속에서 존재할 수 있도록 모색할 것이다. 이는 청년을 단지 연구의 대상이 아닌, 일종의 ‘방법’으로 마주하고, 그로부터 의미 있는 청년 변화를 실질적으로 이끌어 보려는 연구의 궁극적 목표와 맞닿아 있다.
부산 지역 대학 청년 취업 홍포 포스터 https://blog.naver.com/sssully/222566245074
『시정일보』 2024년 10월 29일 자 기사 : (지자체의) 2024 청년 맞춤형 취업 특강 및 컨설팅 홍보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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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진경, 『근대적 시·공간의 탄생』, 푸른숲, 2000, 65쪽
2) 프라센지트 두아라, 『민족으로부터 역사를 구출하기』, 삼인, 2004, 24쪽
3) 陳獨秀, 『청년잡지』 제1권 제1호, 1915년 9월 1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