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4. 인적교류



한한령 관련 동향과 한-중 문화 교류와 협력 전망


부산외국어대학교 중국학부 중국지역통상전공 오혜정


  2016년 7월, 한국 정부가 한반도에 사드(THAAD)를 배치하기로 결정하자 중국은  ‘소프트파워’ 영역에서 압박을 가하기 시작했다. 이른바 ‘한한령(限韓令)’이라 불리는 비공식 제재였다. 중국 국가광전총국과 문화관광부는 한국산 드라마·예능·영화의 신규 수입을 전면 금지했고, 이미 계약된 판권은 대부분 해지되었다. 주요 방송사와 OTT 플랫폼은 한국 콘텐츠 프로그램표에서 단숨에 사라졌으며, 연예 행사·콘서트 기획사들은 한류 스타들의 중국 내 일정 전부를 취소해야 했다. 광고·홍보업계 또한 발빠르게 움직여 한국 연예인을 모델로 기용한 브랜드 캠페인을 잇달아 철회했다. 한·중 문화산업 교류는 그야말로 ‘빙하기’를 맞이했다.

  당시 많은 전문가가 우려했듯, 한한령은 단순히 특정 콘텐츠의 유통 중단에 그치지 않았다. 중국 내 한류 관련 생태계 전체가 위축되었고, 콘텐츠 제작·배급·마케팅 등 연관 산업 전반에 걸쳐 부작용이 확산되었다. 한국 내 수많은 제작사와 기획사, 방송사들이 중국 시장을 축으로 세웠던 비즈니스 모델을 재점검해야 했으며, 일부 기업은 아예 다른 아시아 국가나 유럽 등 다른 국가로 눈을 돌리기도 했다. 반면 중국 측에서는 한국 콘텐츠가 차지했던 공백을 자국 드라마·예능·음악으로 채워 나갔다. 이 과정에서 중국산 웹드라마와 음악 플랫폼은 전례 없는 성장세를 보였고, ‘자국 콘텐츠의 자급자족’ 체제가 한층 강화되는 계기가 되었다.

  한류에 대한 중국 정부의 거부감은 사드 문제를 계기로 드러났지만, 더 직접적인 이유를 배제할 수는 없다. 중국의 대중문화 및 문화콘텐츠 정책에서 중국은 자국의 대중문화 산업의 성장을 통한 해외진출전략으로 ‘나가자(走出去)’정책을 중요한 국가 목표로 삼고 있으며, 이를 위해 우수한 역량을 갖춘 주변 국가의 문화콘텐츠의 학습이 필요로 한다. 여러 요인으로 인해 상대국과의 관계가 악화되면 문화콘텐츠를 제한하고 새로운 상대국을 찾는 형식의 과정을 거쳐 문화콘텐츠 생산과 유통의 핵심 기제와 요소를 학습하여 그것을 자기화하는 모델을 찾는다. 이러한 측면에서 한국의 문화콘텐츠는 중국 시장에서 매우 활용적 가치가 높다고 평가된다. 사드 배치 이전에도 중국은 여전히 한국 콘텐츠에 대한 규제가 있었다. 2014년 장태유 감독의 <별에서 온 그대(来自星星的你)>가 중국 온라인 동영상 플랫폼을 통해 방영 되면서 많은 인기를 얻자 중국 정부는 인터넷 드라마 방영에 관한 규제를 강화하기 위한 통지를 발표하였고, 2016년 <태양의 후예(太阳的后裔)>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송중기가 새로운 한류 스타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그러자 중국 정부는 2016년 6월 20일 <방송 프로그램 자주적 창작 업무 추진 강화에 관한 통지(关于大力推动广播电视节目自主创新工作的通知)>를 발표해 해외 업체와 협력하거나 외국인이 주 제작자인 프로그램도 해외 저작권 포맷 프로그램으로 간주하는 조치를 취했다. 이 통지는 중국 정부가 중국 제작사와 한국 제작사가 공동으로 콘텐츠를 제작하는 것을 제한하는 지침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국제 정세와 산업환경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무엇보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면서 디지털 기반의 비대면 문화 소비가 전 세계적으로 급속히 확산 되었고, 중국 내에서도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와 SNS를 통한 콘텐츠 소비가 일상화되었다. 이 변화는 중국 정부와 업계가 ‘문화강국 전략’을 더욱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2023년 하반기, 중국 국가광판전시총국(国家广播电视总局)은 그간 한한령으로 인해 중단됐던 한국 드라마에 대해 ‘심의 재개’ 방침을 발표했다. 이어 문화관광부는 자국 OTT 플랫폼이 한국 예능과 다큐멘터리를 제한적으로 들여올 수 있도록 허용 권고를 내렸다. 이로써 <빈센조(文森佐)>와 <이태원 클라쓰(梨泰院Class)> 등의 인기작이 중국 로컬 플랫폼에서 재등장했고, 일부는 자막·화면 일부를 현지화해 편집된 버전으로 방영되기 시작했다.


[ 표-1 ] 한한령 이후 중국에서 방영된 주요 한국 TV 드라마

시기
분야
세부내용

2022.1

후난오락TV, 망고TV

<사임당, 빛의 일기(师任堂)

2022.3

아이치이<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经常请吃饭的漂亮姐姐)>

2022.3.

비리비리

<슬기로운 감빵 생활(机智牢房生活)>, <또 오해영(又是吴海英)>
2022.3.

아이치이

〈김비서가 왜 그럴까(金秘书为何那样)〉
2022.4.

비리비리

〈슬기로운 의사 생활2(机智的医生生活)〉
2022.4.

텐센트비디오

<당신이 잠든 사이(当你沉睡时)>
2022.4.

유쿠

<지금, 헤어지는 중입니다(现在,正在分手中)>

2022.5.

유쿠

<이태원 클라쓰(梨泰院Class)>

2022.12.

비리비리

<슬기로운 의사 생활 1(机智的医生生活1)>

2022.12.

아이치이

<힘쎈여자 도봉순(大力女子都奉顺)>

2023.1.

비리비리

<갯마을 차차차(海岸村恰恰恰)>

2023.1.

유쿠

<나의 해방일지(我的解放日志)>


  이러한 변화의 배경에는 문화 소비층의 강력한 수요가 있었다는 점이다. 중국의 20~30대 젊은 세대는 한류에 대한 관심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었고, 웨이보(微博), 위챗(微信), 비리비리(Bilibili) 등 SNS와 동영상 공유 플랫폼 상에는 한국 드라마·예능 클립과 K-POP 뮤직비디오를 공유·감상하는 팬 커뮤니티가 생생하게 살아 있었다. 특히 팬들이 직접 자막을 제작해 배포하는 ‘팬서브(fan-sub)’ 활동, 그리고 온라인 콘서트·팬미팅이 꾸준히 열리며, 공식 유통 경로가 막혀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류 콘텐츠는 비공식적으로 유통·소비되고 있다. 2021년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이 전 세계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자 중국에서도 각종 SNS를 통해 해적판 시청 붐이 일었으며, <더 글로리>,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등 한국 드라마가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내리며 높은 豆瓣(더우반) 평점을 받는 등 비공식 경로의 유통에도 큰 반향을 일으켰다. 

  중국 내 문화산업 전문가들은 이러한 현상을 관찰하며, “지나친 폐쇄성은 오히려 자국 콘텐츠의 글로벌 경쟁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진단을 내리고 있다. ‘일대일로(一带一路)’ 문화 외교 정책을 추진 중인 중국으로서는 한국 콘텐츠가 가진 글로벌 파급력을 전략적으로 활용하는 편이 중국의 자국 콘텐츠의 유통 및 제작적이 측면을 극대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한한령 이후에도 중국 시장에 진출한 외국 콘텐츠 가운데서는 한국 콘텐츠가 단일 국가 기준으로 가장 높은 시청률과 참여도를 기록하기도 했다.


  이제는 이러한 변화의 흐름을 단순히 지켜볼 것이 아니라 한·중 양국은 전략적 협력을 통해 새로운 전기를 마련해 나가야 한다. ‘제도적 기반’, ‘공동제작 및 기획’, ‘교류 인프라’, ‘디지털 혁신’ 이라는 네 가지 축을 유기적으로 연결하여 양국가간 문화적 교류에서의 입체적이고 통합적인 전략이 필요하다. 

  2023년 일부 한국 콘텐츠가 중국 내 심의를 재개했지만, 기준과 절차의 불투명성으로 다수 콘텐츠가 방영되지 못하는 사례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양국 정부가 콘텐츠 심의 기준과 절차를 공동으로 관리하기 위한 체계 및 제도가 마련되어야 한다. 또한 지식재산권(IP) 보호는 협력의 전제조건이다. <윤식당>, <프로듀스 101> 등 한국 예능 프로그램의 포맷은 과거 중국에서 무단 도용된 바 있으며, 이러한 사례에 대응할 제도적 수단은 부족한 상황이었다. 한중 양국은 불법 복제 단속 및 저작권 분쟁 중재를 위한 공동 대응 체계를 구축하고, 콘텐츠 라이선스의 정당한 수익 배분이 보장되는 법적 기반을 마련해야 나가야 한다. 


  두 번째는 공동 제작 및 공동 기획 모델의 제도화이다. 양국의 강점을 결합한 공동 제작은 고부가가치 콘텐츠를 개발할 수 있는 전략적 방식이다. 한국은 세계적 수준의 스토리텔링과 포맷 개발 능력을, 중국은 대규모 자본과 기술 인프라, 그리고 거대한 내수시장을 보유하고 있다. 이를 연결할 경우 글로벌 OTT 플랫폼을 겨냥한 경쟁력 있는 IP 생산이 가능하다.

  <태양의 후예>는 대표적인 한중 공동 제작의 성공 사례였으며, 이후에도 <삼생삼세십리도화(三生三世十里桃花)>와 같은 중국 콘텐츠는 한국 제작 기술을 기반으로 완성도를 높여 글로벌 시장에 진출했다. 향후에는 양국 방송사와 제작사는 공동투자와 수익 분배, 리스크 관리 체계를 명확히 규정한 합작 플랫폼 또는 프로젝트형 얼라이언스를 제도화 할 필요가 있다. 


  세 번째는 문화교류 인프라의 확충과 민간 네트워크의 강화이다. 문화 협력은 결국 ‘사람 대 사람’의 연결에서 출발한다. 한·중 양국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대학, 문화기관이 협력하여 청년 창작자 교류 프로그램, 공동 워크숍등의 프로그램을 활성화시켜야 한다. 특히 상하이·베이징·서울을 순회하는 콘텐츠마켓과 문화·콘텐츠 페스티벌을 정례화하여, 최신 제작물을 소개하고 투자자·유통사·제작자가 한자리에서 비즈니스 네트워킹을 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야 한다. 이와 함께 민간 차원의 크리에이터 페어, 영화제, 음악 페스티벌 등 다양한 이벤트를 통해 양국 관객과 아티스트의 직접 교류 기회를 늘려야 할 필요가 있다. 

  최근의 동향을 살펴보면, 2023년 하반기 이후 한한령 완화 조짐과 함께 중국 내 콘텐츠 유통 생태계에도 뚜렷한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특히 2024년부터는 웨이보, 샤오홍슈(小红书), 비리비리 등 SNS와 동영상 플랫폼을 중심으로 한국 드라마와 예능, K-POP 관련 콘텐츠의 소비가 다시금 활성화되고 있다. 샤오홍슈에서는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나 <더 글로리> 속 패션, 대사, 배경지를 리뷰하는 콘텐츠가 인기 검색어에 오르며, 콘텐츠 소비가 영상 중심에서 ‘문화 경험’ 중심으로 확장되는 양상을 보인다. 또한 2024~2025년 들어 한중 공동제작의 구체적 실행 사례도 등장하고 있다. 예컨대 2024년 상하이 방송국과 한국 제작사가 협력해 청춘 로맨스를 소재로 한 드라마를 공동 제작하여 중국 OTT 플랫폼에서 방영했으며, 다큐멘터리 장르에서도 음식·건축 등을 주제로 한 공동 포맷 프로젝트가 추진되었다. 이는 단순 수입이나 외주 협력 형태를 넘어, 기획 초기부터 공동으로 IP를 개발하는 전략적 파트너십의 확산을 의미한다. 아울러 아이치이(iQIYI), 유쿠(Youku), 텐센트비디오 등 주요 OTT 플랫폼은 2025년부터 글로벌 콘텐츠 경쟁력 강화를 위한 심의 기준 완화 및 유연한 편성 정책을 시범 적용하고 있으며, 이는 향후 한국 콘텐츠의 공식 진출 경로 확대 가능성을 높이는 긍정적 신호로 해석된다.


  마지막으로 디지털 혁신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 코로나19 이후 OTT 플랫폼과 SNS, 메타버스, VR·AR 기술은 경계를 뛰어넘는 문화 소비 경험을 제공하는 핵심 도구로 자리 잡았다. 양국 플랫폼 사업자와 IT 기업이 협력하여 AI 기반 실시간 자막 번역 시스템, 개인화 추천 알고리즘, 인터랙티브 콘텐츠 플레이어 등을 공동 개발·공유하면, 언어와 문화적 차이를 최소화하면서 한류 콘텐츠의 접근성을 대폭 높일 수 있다. 나아가 메타버스 공간에서 가상 팬미팅, 공연, 전시회를 운영하면 물리적 한계를 뛰어넘는 문화체험이 가능해진다. 이는 새로운 팬덤 형성과 수익 모델 창출로 이어질 수 있다. 


  한한령 이후의 한중 문화교류는 양국이 상호 존중과 이해를 바탕으로 새로운 협력의 틀을 마련한다면, 과거의 단순한 콘텐츠 수출입 관계를 넘어 보다 복합적이고 지속가능한 협력 체계로 발전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자료: https://www.hankyung.com/article/2025021965791 검색일:2025.4.23.




[참고자료]

1. 한국문화관광연구원(2023). 『한중 문화교류 정책 로드맵 제안 보고서』.

2. KOFICE(2023). 『한류백서: 콘텐츠 유통 동향』.

3. 박소연(2020). “한중 콘텐츠 협업과 지식재산권 문제”, 『국제문화정책학회』.

4. 이건웅(2018). “중국의 문화산업 규제와 한한령”, 『글로벌문화콘텐츠』 제33호.

5.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2022). 『한중 청년 문화교류 실태 보고서』.

6. 한국콘텐츠진흥원(2022). 『메타버스 기반 한류 확산 전략 연구』.

7. 임대근(2023). “포스트 한한령 시대, 중국 한류를 위한 도전”, 『한류 생태계와 지속가능성』,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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